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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빠뇽금영 Sep 21. 2023

추억을 만든 값

중증치료를 하시는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일이 많아져 밖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일도 잦아졌다. 아빠는 식이요법 때문에 밖에서 드시는 음식을 좋아라 하지는 않으시나 이번 기회에 나는 아빠와의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어 한 끼라도 대충 때우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검사결과가 나오면 진료를 바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아쉽지만 간단히 해결하기로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병원 정문을 나설 때쯤, 길 건너편 쪽에  '손두부' 란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경험상 두부로 만든 메뉴는 선택에 있어 실패율이 적었기에 곧장 아빠를 모시고 들어가 메뉴판을 보기 시작했다. 난 각자 시키는 것보다 푸짐하게 같이 끓여 먹는 전골이 좋겠다 싶어 청국장을 드시려 하는 아빠를 말려 '두부전골'로 주문을 넣었다. 


잠시 뒤, 

아주머니가 반찬 몇 가지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리시는데 반찬의 상태는 뭐라 할까? 새로 만든 반찬이 아닌 어제의 잔반 같았다. 그렇지만 주 메뉴가 나온 건 아니었기에 일단 요건 넘어가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부전골이 나왔는데 헐~ 요게 요게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은 아니었다. 

내가 상상한 두부전골

나는 젓가락으로 뒤적뒤적 재료들을 파헤쳐 보았다. 다행히 두부 아래에 대파와 당근 그리고 서너 가지의 버섯과 숙주가 숨어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두부가 둘러진 냄비 중앙으로 숨겨져 있던 야채를 보기 좋게 올려보았다. 그러고 나니 좀 먹음직스러졌기에 됐다 싶어 '제발 맛있게 끓기만 해라' 하는 바람으로 주문을 외워가며 건더기에 윤기가 흐르도록 국물 끼얹기를 반복했다. 전골은 냄새를 풍기며 한소끔 끓어올랐다. 이제 됐겠지! 하는 믿음으로 아빠에게 먼저 한 그릇 골고루 담아드리고 나도 한 그릇 떠와 숟가락을 들었다. 

재료를 재배치해서 변신한 두부전골 모습

으악~~~~ 이게 뭐야! '보기에 좋은 음식이 맛도 좋다' 했건만, 이건 나올 때의 모습처럼 최악의 맛이었다. 두부는 뻣뻣하고, 국물도 짜고, 갈아 넣은 고기에선 냄새까지 나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이걸 음식이라고 만들어 파나 싶은 생각에 사장을 불러 말해 말어? 하며 고민을 하다가 아빠를 보았는데 아무 말씀 없이 떠 드린 것을 다 드시는 게 아닌가! 아마도 딸이 사 준 음식이라고 싫은 내색 않고 드시나 싶어 맘이 불편해졌다. 나는 얼른 아빠의 속도에 맞춰 식사를 대충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계산을 하면서 사장님께 조용히 상황을 말씀드렸다. "고기에서 냄새가 역해 식사를 제대로 못했어요"라고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고  "어, 왜 그랬을까요?" 하며 되려 질문을 하시는 게 아닌가! 난 예상치 못한 질문이 어찌나 황당하던지 화가 난 상태로 식당을 나와버렸다. 그렇게 툴툴 거리며 병원으로 들어가는도 중 문득 드는 생각이 '이것도 추억이지!' 물론 맛나게 먹은 점심은 아니었지만 이 시간도 기억될 만한 것은 되겠네라고 생각하니깐 갑자기 화가 좀 누그러졌다. 앞으로 두부전골을 먹는 날이면 오늘이 꼭 기억될 것 같았다. 


오늘 지불한 돈이 식사비가 아니고 음식쓰레기 값이 된 것 같아 잠시 속이 쓰렸는데 추억을 만든 값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더니 삼만삼천 원이 좀 가치 있게 느껴져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도 그렇게 난, 아빠와의 시간을 작은 추억서랍 속에 미소 지으며 사알~짝 넣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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