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온다. 이 쯤되면 며느리란 이름을 가진 우리는 신경이 곤두서고 짜증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할 때다. 그도 그럴 것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때에 맞춰 며느리란 위치로 하는 일이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도 기억해 보면 결혼 후 17년 정도 까진 명절이 아니어도 정말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명절을 예로 들면 힘겨웠던 건 음식도 음식이지만 청소에 대한 트라우마가 더 컸었다. 어머님은 며느리들이 시댁에 도착할 쯤되면 미리 준비해 두신 세제를 대야에 담아 화장실 중앙에 보란 듯이 놓아두셨다. 그러면 자연스레 형님과 내가 안방에 딸린 화장실과 거실에 있는 화장실을 두고 구역을 나눠 닦았다. 화장실 청소가 끝나면 상가 계단도 대걸레로 닦아야 한다. 청소업체에 외주를 주면 좋으련만 직접 하기를 고집하시다 이렇게 며느리들이 오면 더 구석구석 닦아내기를 원하셨다. 요건 힘조절을 잘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으로 잘못하면 겨드랑이랑 손목이 무척 아프다. 자~ 여기까지 하면 청소는 끝이겠지 하겠지만 절대 아니다. 어머님은 기분에 따라 싱크대 닦기를 추가시키신다. (이런 경우는 선교활동하시는 형님이 일로 부재중일 때 자주 일어났다.) 이쯤 되면 나도 짜증이 나고 힘도 들어 남편에게 눈치를 주게 되는데 남편이 나를 돕겠다고 걸레라도 들었을 땐 바로 어머님이 " 네가 뭘 하니! "하시며 남편 손에 들린 걸레를 낚아채 가신다. 흑 흑~ 머지않아 그 걸레는 "어머님 제가 할게요" 란 마음에도 없는 소리와 함께 내 손으로 옮겨진다.
그렇게 저렇게 청소타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음식 만들기가 시작되는데, 시작부터 튀김과 전을 좋아하시는 어머님 때문에 기름냄새를 먼저 풍겨야 그다음 일하기가 수월했다. 물론 식혜와 갈비찜, 북어찜 같은 건 기본으로 다 했다. 여기까지가 1차전 이라치면, 명절 당일은 시댁 쪽 큰댁으로 건너가 대가족모임 2차전을 치른다. 이때부턴 설거지와의 전쟁이다. 진짜지 해도 해도 끝이 없이 나왔다. 마지막 3차전도 있다. 이때부턴 어머님 쪽 외가식구들의 만남이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면 캄캄한 밤이 되는데 그때야 비로소 친정에 가는 것을 허락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 어찌 다했나 모르겠다.
결혼한 지 27년 차가 된 지금은 다행히 명절공포증에서 벗어났다. 이제는 어머님과 협상을 통해 하고 싶은 메뉴를 정해 각자 만들어 만난다. 내가 하고픈 메뉴를 위해서만 장을 보고, 혼자 천천히 준비한다. 전 하나를 부치더라도 내 취향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음식의 색도 맛도 더 좋다.
물론 어머님이 개입하는 부분은 아직 상당히 남아있으나 예전 같지 않음은 분명하기에 명절을 맞이하는 과정도 덜 피곤하고 분주하지도 않다. 결혼 초를 생각해 보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지금, 내가 이런 여유 있는 명절을 보낸다.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세월을 잘 보내 얻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식구들 모두가 내 의견에 참 많이 공감을 표한다. 복잡한 명절 상차림이 아닌 정말 잘 먹고 좋아하는 음식으로 간단히 차려 즐겁게 먹고 가족 모두가 이야기하고 쉬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애쓴다. 누구도 소외되거나 불만을 갖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윗세대가 그러지 않아 못했던 여행의 자유를 자식들 세대에겐 허락했다. 직장 생활하다 맞는 연휴기간이 얼마나 귀할까 싶어 그 시간을 눈치 보지 말고 자유롭게 쓰라했다. 가족의 만남은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다른 날 만날 수 있기에 명절이란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길 바랐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한다. '시집살이한 사람이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하지만 난 그러지 않으려 애쓴다. 또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트레스받아봤고,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힘겨운지 아는데 그걸 반복하고 있다면 나는 내 윗세대 보다 더 못한 사람일 테니 그랬었던 문화는 던져 버리고, 이제는 좀 다른 문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그땐 그랬지' 란 이야기를 이 나이 되어서라도 하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일단은 내가 웃어야 가족도 행복하다는 걸 모르고 지냈다. 무조건 참는 게 답이 아닌 것을 결혼 17년을 아프게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진작 용기를 내 볼걸. 그래도 27년 차엔 편안해졌으니 다행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