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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May 30. 2024

새로운 그대가 해맑다.

무심한 그대여!

6개월 먼저 온 그도 매장을 헤매고 있는데 새로운 그대까지 모셔야 한다. 쓸쓸하고 힘든 시간이다. 여자직원을 모시는 구인광고를 내놓고도 경력자가 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알려줘야 하는 분이라면 아는 사람이라도 괜찮겠다 싶다.


사장님께서 물어보셨다.

"과장님! 제 친구 와이프인데 보름뒤에 가게를 접어요. 애가 셋인 데다 벌어야 하는 입장인데 문구쪽 일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알고 보면 사연 많은 불쌍한 사람인데 그분을 모시면 어떨까요?"

"네? 애가 셋에다 사연이 많다고요?"


그 말 한마디에 무조건 괜찮다고 했다. 애가 있으며 사연이 있는 건 그녀만이 아니니까. 그럴수록 열심히 할 동기가 있는 것이니 무조건 괜찮았고 쉽게 그만두지 않을 거라 안심도 됐다.


그렇게 새로운 그대가 결정됐다. 새로운 그대의 첫출근은 5월 초. 오후 출근인 그녀는 근무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여러 가지 예상만 했을 뿐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기에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내심 반가웠다.

"저. 안녕하세요. 오늘 출근하기로 한 누구입니다."

"아! 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편안한 얼굴에 공손한 말투다.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내면이 느껴졌다.

"옷은 저기 계단 밑에 탈의실이 있어요. 거기에 가방이랑 옷을 두시면 돼요."


매장일도 처음이고 여러 사람과 일을 하는 것도 처음인 그대는 생각보다 해맑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대에게 매장 물건들과 제품 위치를 익히게 했다.


사장님과는 자주 보던 사이인지라 첫날부터 허물이 없었다. 너무 친해도 일할 때는 불편한 법인데 미묘한 조율도 신경 써야 했다. 출근한 그대를 겪고 보니 사회생활에 대해서는 완전 초짜였다. 신랑과 자영업을 12년 넘게 해 오면서 자잘한 일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출근하면서 물건을 알아가는 것보다 말이 많은 그대를 보며 무심한 하늘을 원망했다.


~ 나의 호랑이 기운을 끌어올려야 하는 건가요.






무심한 그대여


첫날부터 헤맨 페인트마카

눈앞에 두고도 방황한다

하루의 시간을 투자하여도

소득은 없다

바로 그대 눈앞에 있는


그걸로 페인트마카와

친해진 줄 알았다

몇 개월 뒤 비어 가는 페인트마카

채워달라는 요청에

해맑게 예스를 외친다


며칠이 지나고도 그대로인

우리의 페인트마카

너를 잊어버렸구나

무심한 그대여


눈앞에 두고도 외면한다

대 놓고 텅 비어버린 존재가

동료를 잃어 외로워하는데도

방치하고 외면한다

무심한 그대여


페인트마카는 지워지지 않는 펜인데

그대는 지워내는 편이구려

무심한 그대여


제품이라도 외로워 보인다오

부디 옆에 동료들을 붙여주시오

부탁하오

무심한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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