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가 5년 뒤에 무엇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길 원하나요?
현재 내 첫째 아이는 9살이다.
일반 아이들 부모들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변했을까? 아마 여러 선택지가 있어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 생각해보게 만드는 질문임엔 틀림없다.
이 질문을 성인 자폐인의 치료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미국인 교수한테 회의 중에 들었다.
이런 질문을 들은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부분에 생각해 본 적도 처음이었다.
난 순간 울컥거렸고 머뭇거렸다.
우선 이렇게 말했다.
가장 두려운 순간은 아내와 내가 늙어서 죽은 후라고. 그 후 우리 아이가 독립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고 두렵다고.
그 후 다시 본 질문으로 돌아가 난 생각해 보았다.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오 년 후에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부분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말을 할 수 있거나 사회성이 개선되거나 하는 부분은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꺼내 스스로 먹고 그릇을 싱크대에 두면 좋겠다고 했다.
입을 옷을 스스로 꺼내 입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 전에 혼자 씻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면 좋겠다고 했다.
처음으로 해 봤던 생각이었다. 이렇게 소박한 바람이지만 과연 우리 아이가 5년 뒤에 이것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이 얘기를 들은 자폐 전문 교수는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같이 있던 한국인 공대 교수는 적잖은 충격과 울컥함을 느낀 것 같다. 그의 두 자녀는 미국의 과학고를 나와 첫째는 아이비리그에 둘째 역시 아이비리그 학교 입학이 코 앞이다.
자폐 전문 교수는 말했다. 우리가 함께 구상하고 있는 자폐 연구에 대해서 자폐 아이를 가진 실제 부모의 마음으로써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그것을 생각해 보고 연구 디자인을 하자는 것이었다.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폐 가족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하고 싶다는 말인 것 같다.
공대 교수인 나는 지난 십여 년 간 늘 객관적이고 차가운 연구를 했다. 측정과 분석이 내 연구에 많은 부분을 차지해왔다.
문득 내가 하는 연구가 내 아이한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를 보면 자폐아이의 아빠로써 자폐에 관한 논문도 읽고 스스로 연구를 하는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
연구자인 나의 재능을 활용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일 년 전부터 자폐와 관련된 연구를 병행하고자 마음먹었고 팀을 만들어 현재는 연구 제안서를 쓰는 과정에 있다.
자폐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나는 더 이상 이성적일 수 없다. 논문의 내용 하나하나가 우리의 인생이기에 깊은 울림이 전해진다. 논문을 결과들에 가슴이 애려온다.
회의가 끝난 후 아내에게도 같은 질문을 물었다.
오 년 뒤에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내는 아이가 옆에서 온전히 산책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우리가 14살짜리 아이에게 바라는 것들은 조금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