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는 오후에 도착해서 이틀뒤 새벽에 공항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하루종일 머무르는 날은 하루에 불과했다. 전날 생각보다 많은 곳을 보고 다녔지만 리스본의 마지막날을 가능하면 알차게 보내고 싶어졌다.
먼저 전날 올라가지 못한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Elevador de Santa Justa)를 타러 갔다. 지도앱에 아침 7시에 시작한다고 나와서 도보 5분 거리를 뛰어서 갔는데 근무자가 7시부터는 점검이 시작되는 시간이고 7시 30분부터 탑승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른 곳으로 가기는 애매한 시간이어서 가까이 있는 페드로 4세 광장과 주변을 걸었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오래된 성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어서 알아보니 Rossio 기차역이었다. 페드로 4세 광장 반대편에는 Rossio 지하철역이 있어서 불이 꺼진 채 문을 닫은 크리스마스 마켓 사이로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7시 30분에 시간을 맞춰서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다. 내가 첫 손님이자 유일한 손님이었다. 가장 위의 전망대까지 포함한 표는 5.3유로였는데 엘리베이터만 타는 것을 전날 구입한 교통카드로 가능했다. 엘리베이터라기보다는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정사각형의 방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올라가는 시간은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조금 더 위의 전망대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도시 전체가 잘 보였다. 리스본의 붉은색 지붕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반대편의 카르모 수녀원(Museu Arqueológico do Carmo)은 떠오르는 태양에 빛나고 있었다. 어젯밤에 벨렝탑에 가는 길에 본 제로니모스 수도원보다 규모는 작아 보였지만 거대한 성처럼 보이는 것은 비슷했다.리스본의 수도원들은 대성당보다 더 화려해 보였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외부, 엘리베이터 내부, 위층에 내려서 보이는 전망, 뒤편의 카르모 수녀원
다음은 카르모 수녀원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글로리아 엘리베이터(Elevador da Glória)를 타러 갔다. 이름에 엘리베이터가 붙어있지만 홍콩의 피크트램과 비슷한 산악 트램이었다. 홍콩의 피크트램보다 선로의 길이가 더 짧고 트롤리의 모습이 리스본의 28번 트램과 더 비슷하다는 것은 다른 점이었다. 이번에도 전날 구입한 Navegante로 탑승이 가능했다. 평일 8시 출근 시간대에는 10분에 한 번씩 트램이 다녔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가 있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트램이 올라오는 경사로, 트램의 외부, 트램의 내부, 창 밖으로 보이는 반대편 트램
리스본의 전망대 크롤링을 다니다.
리스본에 오기 전에는 리스본에서 전망대는 산타루치아 전망대(Miradouro de Santa Luzia)만을 가려고 했었는데 그날 아침 생각이 바뀌어서 더 높이 있는 다른 전망대들도 가보기로 했다.
먼저 그라사 전망대(Miradouro da Graça)에 갔다. 뒤쪽에는 은혜의 성당(Igreja da Graça)이 있었고 앞쪽으로는 리스본의 붉은색 지붕들이 강가까지 이어져 있었다. 멀리 4월 25일 다리(Ponte 25 de Abril)도 조금 보였다. 노천카페가 있는 것 같았지만 아직 시작시간 전인지 파라솔은 접혀있고 의자는 겹쳐서 한쪽에 모여 있었다.
북쪽으로 더 높은 전망대가 보여서 찾아보니 세뇨라 두 몬테 전망대(Miradouro da Senhora do Monte)였다. 도보 10분의 멀지 않은 거리여서 바로 이동했다. 리스본의 전경이 더 넓게 눈에 들어왔고 4월 25일 다리도 더 잘 보였다. 여기는 난간에 안전을 위한 철망이 있었다. 남산타워처럼 철망에 채워져 있는 자물쇠들이 있었다. 리스본의 이미지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붉은색 지붕들을 실컷 보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다음은 버스를 타고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Miradouro das Portas do Sol)로 갔다. 이전 전망대 보다 조금 더 넓은 공간이 있고 높이가 낮은 만큼 붉은색 지붕들과 타구스강이 더 가깝게 보였다.
아침 시간에 전망대와 같은 관광지를 가면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좋지만 문을 연 카페를 찾기 어려운 것은 아쉬웠다. 포르타 두 솔 전망대에는 아침 일찍 문을 여는 노천카페 Alfama thea도 있어서 좋았다. 작은 부스에서 커피를 받아서 전망대의 테이블에서 주변 경치를 즐기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도중에 젊은 남자 한 명이 구걸을 시작했는데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영어와 포르투갈어로 말하는 듯했는데 영어로 말할 때 들어보니 "나는 범죄를 짓지 않고 착하게 살기 위해서 구걸하고 있는데 나에게 돈을 주지 않는 당신들은 나쁜 사람들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있는 테이블에서 조차 한참을 그렇게 말할 때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모든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말했는데 유일한 아시아인인 내가 있는 테이블에만 오지 않았다. 이건 또 다른 종류의 인종차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처음의 목적지였던산타루치아 전망대(Miradouro de Santa Luzia)를 갔다. 포르타 두 솔 전망대에서 골목 하나만 돌아서 가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타일 장식이 있는 난간 위로 덩굴이 자라고 있는 전망대는 아름다운 포토존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물론 리스본의 붉은 지붕들과 타구스강의 항구까지 전망도 좋았다. 바로 뒤의 산타루치아 성당(Igreja de Santa Luzia)도 작은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펍을 돌아다니면서 맥주 한잔씩을 마시는 펍크롤링처럼 리스본에 있는 4개의 전망대를 모두 다니는 전망대 크롤링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왼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세뇨라 두 몬테/그라사/포르타 두 솔/산타루치아에서 보이는 전망, 오른쪽 포르타 두 솔 전망대 카페/산타루치아 전망대 난간
마지막 일정은 기념품 구입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돌길과 경사로가 캐리어를 끌기에 얼마나 불편한지를 익히 들었기 때문에 보름간의 이번 여행은 백팩 하나에 들어가는 짐만을 챙겼다. 그러다 보니 가방에는 작은 기념품 하나 더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파리에서 잠시 짐도 맡겨야 하기 때문에 리스본에서 캐리어와 기념품을 살 생각이었다. 내가 머문 곳이 관광 중심지에 해당해서 그런지 주변 상점의 케리어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조금 멀리 떨어진 쇼핑몰을 찾아보다가 스페인 말라가에서 티셔츠를 산 Primark가 있는 쇼핑몰인 Centro Comercial Colombo를 찾았다. 가격대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구입한 1일 교통권의 사용 시간이 몇 시간 남아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갔다.
쇼핑몰 안에는 한국의 홈플러스와 비슷한 Continente라는 대형 할인마트가 있었다. 차이점은 바닥이 타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마트의 바닥이 타일이라니 리스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끄는 카트만 타일바닥에서 유독 큰 소리가 났다. 리스본 시민들은 타일 위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카트를 끄는데 익숙해진 것 같았다. 아이들이 원한 과자와 아내가 말한 체리와인을 사러 들어갔는데 마침 내가 원한 크기와 가격대의 캐리어도 팔고 있었다. 캐리어를 먼저 사고 과자와 그날 저녁 내가 먹을 라면을 샀다. 체리와인은 아내가 사달라고 했던 것이 없어서 그냥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행히 거의 빈 캐리어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간을 들고 다닐 수가 있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호텔 객실에 캐리어를 넣어두고 리스본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산다는 메이아두지아(meia.dúzia) 물감 잼을 사러 갔다. 총 3곳이 검색되었는데 2곳은 문을 닫았고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옆의 한 곳만 영업 중이었다. 근처에서 가게를 찾지 못하고 지도앱을 보면서 왔다 갔다 했는데 가게 입구가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계단 중간에 있었다.한국 손님이 많아서 직원은 간단한 한국말을 할 수 있었고 매우 친절했다. 아내와 실시간으로 메신저를 하면서 잼을 골랐다.
다음은 체리와인과 비누 그리고 생선 통조림을 살 차례였다. 쇼핑몰에서 아내가 원하는 체리와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아내가 기념품가게 A Vida Portuguesa를 찾아서 메신저로 알려주었다. 거기서 나머지 기념품을 모두 살 수 있어서 편했다.
구입한 물건들을 방에 가져다 두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은 었었다. 리스본을 방문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이미 너무 많은 곳을 다녔다. 그냥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는 리스본 거리를 걷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에 공항을 가야 하기 때문에 맥주 대신에 콜라를 마시며 창밖으로 리스본의 야경을 즐겼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메이아두지아 잼, 체리와인, 비누세트, 생선 통조림 (가운데는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계단 중간에 있는 메이아두지아 잼 가게 입구)
포르투갈 항공 비즈니스를 타고 파리로 가다.
다음날 새벽 5시쯤 볼트를 불렀다. 다행히 주변에 볼트가 많아서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새벽이라 차가 막히지 않아서 예상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 포르투갈 리스본 국제공항(Aeroporto Internacional de Lisboa)에서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Aéroport de Paris-Orly)으로 가는 비행기는 EU 국가 내의 이동이었기 때문에 국내선을 타는 것과 비슷했다. 파리 샤를드골 국제공항(Aéroport de Pari-Charles de Caulle)에서 환승은 EU국가 밖으로 나가는 출국심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위탁 수화물을 리스본에서 인천으로 바로 보낼 수는 없었고오를리 공항에서 찾아서 드골 공항에서 다시 부쳐야 하는 것은 불편했다. 택스리펀드도 리스본 공항에서는 EU 국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리가 불가능하고 파리 드골공항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탑승 수속이 빠르게 처리되어서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기다렸다. 스타 얼라이언스(Star Alliance) 항공사들이 함께 사용하는 리스본 공항의 비즈니스 라운지는 심플했다. 세비야 호텔 조식에서 본 것처럼 빵과 햄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에그타르트도 있었는데 알부페이라 Sol E Mar 호텔 조식의 에그타르트가 훨씬 더 맛있었다.
리스본 항공의 비즈니스 석은 2개의 좌석이 붙어있어서 좌우는 그리 넓지 않았지만 완전히 평평하게 펼쳐서 누울 수 있었다. 자리보다 놀라운 것은 비행 중에 무료 와이파이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속도에 따라서 요금이 달랐는데 간단하게 메신저로 글자를 보내는 정도는 무료로 사용이 가능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침 식사가 나왔다. 간단하게 맛만 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모두 먹었다. 평소에 아침을 잘 먹지 않는데 리스본 공항 라운지와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침만 두 번을 먹어버렸다.
리스본 공항을 8시 15분에 출발해서 파리 오를리 공항에 11시 45분에 도착하지만 파리가 1시간이 빠른 시차를 감안하면 2시간 30분의 짧은 비행이었다. 식사를 하고 와이파이를 사용해서 한국과 톡으로 연락을 하고 좌석에 달린 모니터로 뮤직비디오 몇 편을 보는 동안 금방 파리의 오를리 공항에 도착하였다.
위에서 아래로 포르투갈 TAP 항공(스타얼라이언스) 라운지, 의자를 세우면 발을 뻗어도 앞에 닿지 않고 침대처럼 펼칠 수 있는 좌석, 메시지는 60분간 무료 Wifi 사용 가능
이렇게 나의 더할 나위 없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은 끝을 맺었다.
하지만 마지막 도시 파리의 레이오버 여행이 남아 있었다.
『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와 글로리아 트램 탑승 안내 (2023년 11월 기준) 』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와 글로리아 엘리베이터 둘 다 리스본의 고지대와 저지대를 이어주는 교통수단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교통카드로 탑승이 가능하다. Lisboa Card 뿐만 아니라 Navegante 1일권으로 탑승이 가능하다.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는 대부분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서서 탑승하지만 글로리아 엘리베이터는 리스본 시민들도 많이 이용한다.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계단 아래 오른쪽에 입구가 있다. 이른 아침을 제외한 관광객이 몰리는 시간은 계단 위까지 길게 줄을 선다. 가장 위의 전망대 입장권을 포함하면 가격은 5.3유로이다. 입장권 결제는 카드는 안되며 현금만 가능하다. 엘리베이터만 타고 위아래를 이동하는 것은 교통카드로도 가능하다. 엘리베이터 안에 버스 결제기 같은 노란색 기계에 카드를 가져다 대고 탑승하면 된다.
글로리아 엘리베이터는 Glória Restauradores와 Glória S. Pedro Alcântara를 왕복하는 51E 노선의 트램이다. 요일에 따라서 운행하는 시간이 다르다. 평일 8시부터 23시까지 한 시간에 4대에서 6대가 운행한다. 매표소에 왕복 3.80유로이고 카드 결제는 안되며 현금만 가능하다고 붙어있다. 교통카드로 이용이 가능하며 트램 안쪽 노란색 기계에 표를 가져다 대고 타면 된다. 운행 시간 안내문에 있는 Ascensor Glória를 지도앱에서 검색하면 주변의 다른 버스 정류장이 나오므로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