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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까 Mar 10. 2017

천사의 시간

신이 축복한 나라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TV없는 집에서 적막함을 달래려 종종 라디오를 틀어놓곤 했었다. 넓은 브라질 땅만큼 라디오 방송국 숫자도 많은데 그 중에 우리는 브라질 현지 노래가 아닌 최신 히트 팝 위주의 방송을 주로 들었다. 


데이빗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도 같은 채널을 맞춰 놓았는데, 아무리 신나고 경쾌한 비욘세의 싱글레이디즈가 나오다가도 6시만 되면 잔잔한 아베마리아가 흘러나왔다. 그냥 이 방송국 특징이겠거니 하며 별 생각 없이 듣고 있었다. 


하루는 차를 타고 시골집에서 도시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동네가 다르니 우리가 평소 듣던 방송국을 찾지 못해지지직 거리지 않는 채널에 주파수를 맞춰 듣고 있었다. 그런데 6시가 되니 어김없이 아베마리아가 흘러나왔다.

브라질에 와서 저녁시간마다 아베마리아를 들은 지 4개월만에야 비로소 궁금증이 생겼다. 설마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데이빗은 오히려 왜 그걸 모르냐는 반응이다.


6시는 천사의 시간 (Hora do Angelus) 이잖아.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를 알린 성스러운 시간. 그래서 6시에는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천사의 시간임을 알리려 아베마리아가 흘러 나왔던 것이다. 몇몇 채널에서는 6시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한단다.


유아세례를 받고 20대까지는 성당도 열심히 다녔던 가톨릭 신자인데 ‘천사의 시간’이 너무 생소했다. 그래서 찾아보니 이 시간은 우리나라에서 삼종기도를 바치는 9시, 12시, 6시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브라질은 일상생활에 가톨릭이 종교가 아닌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성탄절, 카니발, 성금요일, 부활절 등 예수님 탄생에서부터 사순시기, 부활까지 주요 사건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온 국민이 기념하고 축하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리고 데이빗 가족이 가톨릭이라 그런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식사때마다, 사람들과 헤어지고 만날때마다, 어떤일이 있을때마다 ‘Amen. Obrigada (아멘. 감사합니다)’를 잊지 않으시는 시어머니는 데이빗 말에 따르면 한번도 성당에 가보신 일이 없다고.


우리 결혼식때도 그랬다. 나와 데이빗은 모두 가톨릭이지만 결혼식때 주례를 서주신 분은 데이빗이 어릴때부터 옆집에 사셨던 목사님이었다. 물론 교회에서 하는 예배같은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개신교, 천주교, 무교 할 것 없이 모두가 중간에 같이 손을 모아 기도해 주었다.  

 

브라질 포르투갈어를 보면 신이 언급된 표현을 종종 볼 수 있다.


하루는 데이빗 누나와 저녁을 먹고 헤어지며 내일 만나자고 인사했다. 그 다음날 다시 만나 같이 할 일이 있었기에 ‘잘 가고 내일 보자’라고 한 내 인사에 대해 그녀는 대답했다. 


Se Deus quiser (신이 원한다면)


아니 이런 무책임하고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다니. 


이슬람 문화권 국가에서 지내본 친구들을 통해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인샬라 (신의 뜻대로)’. 약속시간에 늦어도 인샬라, 일이 제대로 안되도 인샬라. 


브라질 사람들도 한국인에겐 세월아 내월아 느긋하고 답답하게 보이긴 하지만 ‘Se Deus quiser’라는 말까지 있는지는 몰랐다. 물론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대로 ‘신이 원한다면 하고, 안 원하면 안 해’ 라는 의미는 아니다. 영어의 ‘God willing’ 처럼 ‘특별히 별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라는 뜻으로 평소 많이 들을 수있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Vai com Deus (신과 함께 가세요)’, ‘Durma com Deus (신과 함께 주무세요)’ 등 ‘신과 함께’라는 말을 넣어 하는 일을 축복하고 안녕을 기원하기도 하고, 어르신들에게는 'Bença (신의 축복)'이라는 말을 건네 인사를 하기도 한다.


누가 보면 모두가 엄청 종교적이고 신앙심이 깊은 것 같지만 실상은 브라질에서 성당을 가봐도 대부분이 어르신들이고, 세례는 받았지만 주일마다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참 재밌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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