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전셋집에 대한 기억
우여곡절 끝에 이사 온 세 번째 전셋집은 같은 단지였지만 리모델링이 조금은 되어 있었던 두 번째 집보다 상태가 안 좋았다. 구축 화장실에서 욕조를 떼어낸 자국이 그대로 있었고, 화장실과 주방의 타일줄눈과 창틀 실리콘에는 검은곰팡이가 수두룩했다. 흰색 페인트로 칠한 방문은 누렇게 떠있었고, 콘센트와 스위치 커버는 떨어져 있는 게 많았다. 90년대 주택집에서 보던 학무늬의 중문과 연두색 신발장도 집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박박 문질러 청소를 해도 청소를 한 것 같지 않은 화장실. 이게 내 눈에는 제일 거슬렸다.
2년 후 이사 갈 새집이 있다고 생각하니 일부러 돈 들여 뭔가를 예쁘게 꾸미고 고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청소도 하나마나니까 더 안 하게 되어 집 상태는 엉망이었고 그럴수록 빨리 새집으로 입주하고 싶었다.
그래도 장점을 생각해 보자면 우선 1층이라 아이가 뛰어도 부담이 없다는 게 첫 번째.
두 번째 집은 6층이었는데 아이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오늘 날 오후, 아이가 자고 있는데 관리사무소에서 인터폰이 왔다.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다고. 그래서 우리 아이는 지금 자고 있고 아직 기어 다니는 것도 잘 못한다고 하니 우선 알겠다고 하시며 끊었다. 하지만 기분이 별로였다. 우리 앞집에 초등학생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들락날락할 때 시끄러운 소리에도 우리는 그러려니 하며 지냈었다. 그 오해를 우리가 받고 있는 건가.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 아이와 외출을 하는데 아파트 입구에서 한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5층 사는데 며칠 전 너무 시끄러웠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나는 방에서 늦잠을 자고 있었다. 남편은 아이와 놀아주면서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음악이 너무 시끄러워 우리 집에 찾아왔는데 벨을 눌러도 문을 안 열어줬다고. 불면증이 있어서 아침에 자야 하는데 음악 소리 때문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남편은 한국어가 서툴러 모르는 사람이 오면 문을 안 열어준다. 내가 자고 있으니 그날도 그냥 무시했던 거다. 나도 불면증이 있고 아침잠이 많은데 음악 소리에도 잠을 잘 자고 있었다. 음악을 얼마나 작게 들어야 하는 것인가.
어느 날 한 번은 아예 우리 집에 찾아오셨다. 층간소음으로 윗집에 찾아가는 게 주거침입죄라는 걸 알았다면 문도 안 열어 줬을 텐데. 나는 아이와 놀고 있었고 남편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방문에 아이는 놀라서 울었고 아주머니는 아이가 뛰어다니는 나이가 아님을 보시고는 타깃을 남편으로 돌려 덩치가 커서 걸을 때 시끄러운 거 아니냐고 하셨다. 어이가 없었다. 지난번 일 이후 소음 발생 안되게 하려고 얼마나 신경 쓰고 살았는데.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되다니. 억울했다. 아주머니는 예민해서 소리가 잘 들리니 배려를 부탁한다고 하셨다. 그 말에 나도 마찬가지로 양해 좀 해달라고 맞받아쳤다. 코로나 팬데믹에 마스크도 안 쓰고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다니. 나중 되어서야 그걸 생각하지 못한 게 떠올라 더 억울했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또 아랫집에서 올라오지는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기에 1층집이 나왔을 때 쾌재를 불렀다. 물건이 떨어져도 놀라지 않았고 아이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도 마음껏 뛰도록 했다. (하지만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은 뛸 때도 까치발로 뛴다ㅠ)
그리고 두 번째 장점은 재활용품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게 덜 귀찮았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필요가 없으니 설거지를 하다가 음식물쓰레기가 쌓이면 바로 슬리퍼를 끌고 나갔다.
아. 관리비에 승강기 이용료도 없었던 것 같다.
1층의 단점은 벌레가 많다. 특히 바깥에서 보던 검은 개미가 어느 틈으로든 집안으로 들어왔다.
창문을 열고 지내는 계절에 밖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그 냄새가 집안으로 퍼진다. 그리고 밖에서 얘기하는 소리도 잘 들린다.
지상 주차장의 차 불빛 때문에 밤에 암막 커튼은 필수다.
새집만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고 버텼다.
그런데 언제 이사 갈 수 있을까?
완공예정일이 다가왔지만 공정률은 낮았고 입주지정일은 공지가 늦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