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이 잘 나가게 하려면
집주인분이 사시는 집과 함께 내가 살고 있던 전셋집도 부동산에 매물로 올랐다.
하지만 집이 나가지 않으니 이사날짜를 정할 수가 없었다.
미리미리 계획하고 준비하고 차선책까지 생각해 놔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보니 아무것도 정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불안했다.
집주인분이 거래하시는 부동산만 믿고 있을 수는 없어 당근과 네이버 카페에도 글을 올렸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많았는데 계약한다는 사람은 없었다.
리모델링이 안된 구축에 1층이라 매력적인 집이 아니니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주려고 너저분한 짐은 싹 정리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아늑해 보이도록 꾸몄다. (진작 이렇게 쾌적한 환경에서 지냈으면 좋았을걸...)
고깃집 가위를 현관에 두면 집이 빨리 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집에 있는 주방가위를 신발장 서랍에 넣어놓았다.
남편은 친구 장모님 조언대로 여자 성기를 그림으로 그려 싱크대 아래에 붙여 놓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이런 거였다.
그렇게 신경을 쓰고 갖가지 노력을 했는데도 소용없었다.
이 와중에 디딤돌대출 금리가 2024년 8월 16일부로 인상된다는 발표가 있었다. 언제 이사 갈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인상 전 금리를 적용받기 위해 8월 15일에 기금e든든에 대출신청을 해버렸다. 이사예정일은 그때 다니고 있던 회사 퇴사일 이전인 9월 마지막주로 넣었다.
생각보다 빨리 사전자산심사가 통과되었고 서류를 들고 은행을 찾았다. 정확한 이사 날짜도 모르는데 대출신청부터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추진력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직을 하면 대출과정이 더 복잡해질 것 같아 그냥 빨리 해치워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전세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집이 나갈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임의로 정한 이사예정일을 집주인분께 알리고 법적으로도 나에게 권한이 있음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사실 집주인과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네이버 카페, 블로그, 지식인, 그리고 입주예정자협의회에서 계약한 법무법인에까지 자문을 구해 법률조항을 근거로 내가 원하는 날짜에 이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문제는 돈이었고 전세퇴거자금대출도 있음을 알려드렸다. 다행히도 악의가 있거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분은 아니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지만 이런 대화를 하는 과정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집주인분께 언제까지 전세금 반환을 해주겠다는 확답을 받고 나서야 마음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사까지 딱 한 달이 남아있는 시점에 이삿짐센터를 예약하고 입주청소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전세계약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