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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요 Oct 29. 2020

<오봉골 인스타> #9. 술

1인용 시점 태그 소설






 숙취로 반쯤 죽어 있었다. 12시 너머까지 마시는 게 아니었다. 신데렐라를 도와준 마법사 할머니도 왕년에 술 좀 마셔봤나 보다. 마법을 12시까지 걸어놓은 일은 똑똑한 일이었다. 파티가 12시를 넘기면 맹꽁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아름다운 신데렐라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파티의 흥에 겨워 자기도 모르게 떠벌대다 보면, 12시에 옷이 허름하게 변신하지 않아도 왕자의 정나미가 뚝 떨어질 수 있다. 마법사 할머니는 이를 걱정했던 것일까.

 아니면 다음날 숙취와 함께 밀려오는 이 이상한 기분 때문에 마법을 걸어놓은 것일까. 즐겨보던 드라마 엔딩보다 더 허무하고, 세어 나온 생리보다 더 민망한, 이 기분 나쁜 느낌. 아무런 별 일이 없다 하더라도 숙취 후 일어나면 생기는 이 ‘면구스러움’은 뭘까.

#신데렐라 주사(酒邪)     



 회식 싫어하는 것을 다음 날 아침에야 떠올렸다. 워낙 오랜만의 술자리다 보니 별 생각이 없었다. 주말 알바를 위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잔 적이 없고 내내 꿈만 꾼 것 같았다. 꿈속은 여전히 회식 도중이었다. 사람들은 우리 집 밥상에 앉아 술상을 펴놓고 저마다 껄껄껄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 밑에 겨울 이부자리를 펼치고 누워,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우리 집이다 보니 어디 도망가지도 못하고 메여 있었다.

#주몽(酒夢)     



 예전 회사를 다닐 땐, 술자리 모드란 걸 장착했다. 내 안에 있는 30% 정도의 외향성을 이때 최대한 끄집어내려 노력했다. 그런데 회식 술자리에선 유독 외향적이게 되기 쉽지 않았다. 일부로 의식해서 그런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회식 시간에는 일할 때 보다 더 많은 외향성을 요구했다. 넉살뿐 아니라 헬레레하는 모습까지 보여줘야 사람들은 더 좋아했다. 그게 사회성이고 능력처럼 보여서 연기를 해서라도 그런 척 보여야 했다. 진심으로 정신줄을 놓고 놀아야 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되었다. 간신히 분위기 망치지 않을 정도로만 자리 보존할 뿐이었다.

 별 도움이 되지 않던 이 모드는 또 한가지 단점이 있었다. 시간이 짧아 오래가기 힘들었다. 3시간이 마지노선이었다. 그래도 목구멍으로 술이 벌컥벌컥 들어가면 그럭저럭 취한 맛에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다음 날 숙취가 올라올 때, 생각지 못한 부끄러움들이 같이 올라왔다. 별 남사스러울 일도 없는 일에 하루 종일 얼굴이 뜨거웠다. 

#생계형 외향성 부작용     



 술자리에서 잠깐 오고 간 대화가 자꾸 머리에 맴돌았다. 그 자리에서 휘발되는 이야기들이었는데, 어떤 말은 귀에서 떨어지지 않고 머리에 붙은 껌처럼 딱 달라붙어있었다. 이때를 기회삼아 마음속 면박이가 ‘왜 그때 따박따박 반박하지 않았어!’라며 구박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자 속이 갑갑해 사이다 한잔이 먹고 싶어 졌다. 사이다 발언도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워졌다. 이때 어깃장이 특기인 면박이는 어깃장에 또 한 번의 어깃장을 부린다. 이게 뜻밖의 위로가 된다.

 “사이다 무슨. 사이다, 액상과당에 탄산일 뿐이야. 뱃살만 나오지. 소화가 안 되면 소화제를 먹어야지 무슨 사이다? 그리고 소화제 먹어도 너 소화 못 시키는 것 많잖아. 우유 먹기만 하면 설사 쫙쫙하면서. 뭘 그렇게 다 소화할 수 있는 것처럼 굴지?”

#유당 불내증 #빈말 불내증




출처 죄송합니다 못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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