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용 시점 태그 소설
으응 그래, 잘 지내고, 다음 달에 보자.
갑자기 전화가 왔다. 영진의 전화였다. 3년간의 앙금은 풀었지만 사이는 전과 같지 않았다. 그 당시 모임에 나가기 싫다는 마음을 이야기하였다가 3년간 내 말을 모두 씹은 친구가 영진이다. 그런 영진이 불편하여, 모임 밴드를 탈퇴하자 다른 친구 규영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진이가 너 보고 제명이래?’
여러 번 영진에게 전화와 문자를 하였지만, 답은 없었다. 결국 3년 후, 다시는 보지 말자는 나의 절교 메시지에 그제야 전화가 왔다. 그게 몇 달 전 일이었다.
#회원 탈퇴는 넷플릭스처럼
핸드폰에 뜬 영진의 이름을 보자 심장이 벌렁거렸다. 예전엔 이년 저년 할 정도로 허물이 없었지만, 이제는 그녀가 ‘엄석대’ 같이 느껴졌다. 제명이라니. 나는 그녀의 조직원 중 하나였던 걸까. 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고민하는 순간이 더 궁색해 바로 받았다.
10분 넘게 통화를 하였다. 입이 요실금이라도 걸린 듯 이런저런 말들이 세어 나왔다. 어색한 사이라 하더라도, 수다 떤 세월이 길었다. 머리까지 거치지 않고 자연스레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문제없이 통화를 마쳐가는데,.. 마지막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다음 달에 보자...".
#결국 만나지 않았다
이렇게 세상이 쪼그라들기 전부터 서서히 고립은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대학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학교 다닐 땐 매달 MT와 회식을 하던 막역한 친구들이었다. 이름까지 만들어 의리를 자랑했다. ‘지랄파’였다. 자기 일에 지랄 맞자는 의미로 지었는데, 과격한 이름 덕분이었을까. 사이가 좋았다. 싸워도 술 한두 잔 마시다 보면 다 풀고 시시덕대던 사이였다. 평생 죽을 때까지 보자고 하였다. 지금 와 다시 보니 혈서만 안 썼지, 조직은 조직이었다. 유치하고 촌스러웠지만, 몸담고 싶은 조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니가 가라 하와이 #알로하
취직을 하면서 만나기 힘들어졌다. 유독 야근이 많았던 나는 더욱 모임에 나가기 힘들었다. ‘회사일 네가 다하냐’는 핀잔이 식상해질 정도로 매일 밤 근무였다. 직급이 올라 조금 시간이 나기 시작할 때쯤 친구들은 시집을 갔다. 그러니 또다시 만나기 힘들어졌고, 간신히 만난다 하더라도 대화는 온통 결혼 이야기뿐이었다. 이들 중 결혼 안 한 사람은 나뿐이다. 예전엔 재밌게 주고받던 소개팅 진상남이나 회사 또라이 상사 이야기를 한 소절 꺼내려하면, 재미없는 이야기하지 말라며 영진이 단칼에 잘라버렸다. 시어머니 욕만 하기에도 수다 떨 시간은 모자랐다. 처음 한 두 번은 멱살을 잡으며 넉살을 떨었지만 더 이상은 안 되었다. 점점 그네들과 대화 공통점이 사라져 갔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재미없는 이야기 #사라져 버린 무엇 #상실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