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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요 Oct 29. 2020

<오봉골 인스타> #8. 대학 친구 II

1인용 시점 태그 소설







 아이가 셋이나 있던 주영 언니는 나보고 아이를 빨리 낳아야 한다며 세진이 결혼식 내내 재촉을 하였다. 그때 내 나이가 30대 초중반이었을까? 나이 들어 아이를 낳으면 힘들다는 푸념 마지막엔 꼭 내 걱정이었다. 푸념후 느껴지는 초라함을 나로 마무리 짓고 있었다. 아이 키우기 힘들어서 그렇구나 이해는 되었다.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러나 장장 2시간 내내, 한 말을 또 하고 또하고 또하고. 반복하고 계속 반복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불쾌했다.

 나도 내 자궁은 걱정스러웠다.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걱정이 고맙긴 하였지만, 그렇게 길게 들을 이야긴 아니라 생각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자(짜증낼게 아니라 도망을 갔어야 하는건데 그걸 못했다), 언니는 ‘얘가 왜 이러냐’는 표정으로 어이없게 쳐다보았다. 언니에게 바로 사과는 하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남자 친구도 없는 나에게 아이를 낳으라니, 수치심이 들었다.

#여자가 여자에게 듣는 성희롱     



 칭찬이 많던 지현이는 내 피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얘가 애를 안 낳아서 피부가 이렇게 좋아. 팔자 주름 하나가 없잖아. 팔자가 좋아서 그런 거라니까.”

 그래 애를 안 낳아서 피부가 좋을 수 있다. 맞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원래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애를 낳았어도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나이가 들어 앞머리가 숭숭 빠지기 시작하고, 젖 한번 물려보지 않은 가슴도 축축 쳐지는데, 그깟 조금 더 좋은 피부쯤은 내 능력이라 뻐기고 싶었다. 

#중력에도 상팔자가 있나   

 


 마음에 심이 박혔다. 자격지심. 나를 위한 걱정이나 칭찬이 공격처럼 느껴졌다. 사실 공격이어도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그런 공격들이 전혀 없는 사이들도 아니었다. 엉기고, 치대고, 괜한 오지랖과 보이지 않는 공격, 수비로 돈독했던 사이다. 그런 것에 뒤치고 박치고 하는 게 그들과의 관계였는데, 자격지심이란 칼이 명치에 콕 박히고 나니 그런 복잡다단한 댄스를 더 이상 같이 추기 힘들었다. 

 의미 없는 한풀이가 하필 나에겐 공격이 되어 버리는 대화. 이해하려 하였지만 다 받아들일 순 없었다. 상대의 명치에도 나와 모양은 다르지만 칼이 꽂혀 보였다. 마음의 심은 살다 보면 다들 조금씩 자라나는 것일까. 나의 모멸감과 상대의 모멸감이 스치면 본의 아니게 악의가 생기곤 하였다. 그냥 바라보는 게 그나마 최선이었다. 이해도 못하면서 서로를 안을 순 없었다. 나도 모르게 비열한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4대 ~치 #몸치 박치 음치 명치



 칭찬 같은 공격에 이해 같은 무시가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더욱 대학 친구들과 멀어졌다. 그들과 대화가 어려워졌다. 경쟁적으로 하는 자랑 대화가 지겨워졌다. 동창회에서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는 아주머니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며, 우리는 그러지 말자 이야기하곤 하였는데,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지지 않으려고 꾸역꾸역 자랑을 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뭘 그렇게 지기 싫은지.

 대화란 것이 꼭 진실과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사람을 더 외롭게 하는 한계도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예전과 달리 모멸감을 느꼈다. 아무도 나를 모욕하지 않는다 하여도 누군가 나를 모욕하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일까. 이 서운함을 가장한 비루한 감정은 무엇일까.

#4대 본능 #성욕 #수면욕 #식욕 #모욕     




출처 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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