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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요 Oct 29. 2020

<오봉골 인스타> #10. 영특이

1인용 시점 태그 소설






* 이번 오봉골 인스타는 15살짜리 개 영특이 버전입니다.

 내 옆에 묶여 있는 저 또라이 녀석의 이름은 영칠이다. 내가 저 놈 땜에 하루도 편치 않다. 끔찍했던 그 날이 떠오른다. 나의 견생(犬生)에, 그렇게 치욕스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파주로 이사 온 후, 둘째 딸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우리를 산책시켰다. 그리하여 나는, 대소변을 가릴 시간이 늘어나, 수면 반경 50m 안에 오줌 한 방울 흘리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가치관을 바꿔주었고, 애티튜드 또한 변하게 하였다. 더욱 매너 있게 생활할 수 있었기에 똥, 오줌은 되도록 보이지 않게 수풀에 누었다. 그렇게 라이프스타일은 점점 엘레강스하게 바뀌어 갔다.     

#하이 엔드 라이프



 여느 때처럼 평안한 하루였다. 그날도 둘째 딸은 우리와 산책을 나갔다. 찻길을 건너, 둑방 길에 오르면 오른편에 넓은 들판이 이어졌고 한참을 가다 보면 들판으로 내려가는 농로길이 나왔다. 둘째 딸은 그 길에 우리를 풀어놓곤 하였다. 

 줄에서 풀리면 해방감에 정신없이 뛰어 나갔는데, 이때 영칠이는 기분이 ‘업(up)’되는지, 내 몸뚱이 위로 뛰어올랐다. 이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기에 이러면 안 된다며 몇 번을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뒷발도 날려봤지만 부질없었다. 오늘도 또 줄이 풀리면 내 위로 점프를 시도할 것 같아 조금 긴장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녀석이었다. 

#욜로 라이프



 그런데 어인 일로 영칠이 녀석은 나에게 오지 않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지난번의 발길질이 효험이 있었던 걸까. 상쾌한 기분으로 바람을 맞으며 달려가는데, 영칠이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오른쪽 수풀에 영칠이가 있었다. 워낙 수풀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개의치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때, 둘째 딸의 아찔한 비명이 들렸다.

 “으악!!!! 영칠아!!!! 이놈아! 그만 먹어!! 그만!!!!!!!!!! 으, 토할 거 같다!! 우욱, 욱.”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뒤돌아 달려갔다. 둘째 딸이 영칠이의 초록 목줄을 잡아, 시멘트 농로 길 위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둘째 딸은 영칠이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신나서 씩 웃고 있는 영칠이의 입에 누런 무언가가 묻어있었다. 혹시나 싶어 수풀을 살펴보니, 인간의 똥이 마구 헤쳐져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길래 저기에 똥을 눈 것일까. 나처럼 매너를 지키기 위해 수풀 안에 똥을 눈 것인가?

#에코 라이프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영칠이 저 근본 없는 자식, 저 똥개 새끼.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 왔길래, 똥을 쳐 먹는 것이냐. 옛날엔 똥을 먹는 개가 있었다고 풍문으론 들어왔지만, 저 영칠이가 똥을 먹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영칠이 같은 녀석들 때문에 똥개라는 수치스러운 말이 생긴 거였구나. 자랑스럽게 웃고 있는 저 놈의 면상을 뒷발로 한 대 더 치고 싶었다.      

 그렇게 그날의 산책은 빠르게 끝났고, 둘째 딸이 우리를 보는 시선은 예전 같지 않았다. 나는 영칠이와 다르다고 계속 어필하였지만, 둘째 딸은 영칠이와 나를 달리 보지 않았다. 예전처럼 얼굴에 뽀뽀도 안 해주었고, 부비부비도 꺼렸다. 어차피 영칠이 녀석은 둘 다 귀찮아해서 전혀 아쉬울 게 없어 보였다. 단순하다.

#미니멀 라이프





출처 15살 검은 개 영특이, 5살 누렁 바둑이 영칠이
이제는 압도적으로 가장 큰 1년도 안된 영백이, 다리거는 고양이 콧수염이 (올봄에 들어왔는데 1살 정도 먹은 것 같음)
14살 소심한 까미, 한 번도 만지지 못하는 5살 초코(초코 자식이 둘 더 있는데 보기도 힘들고 만지기도 힘듦 그래서 사진 누락) 모두 환상 속 동물, 왜냐면 이 글은 소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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