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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요 Oct 29. 2020

<오봉길 인스타>  #12. 담배가게 아가씨

1인용 시점 태그 소설






 쭈뼛거리는 저 정육점 늙은 남자의 얼굴이 역겹다. 나를 향한 행동들 하나하나가 불쾌하고 거북하다. 메스꺼운 속마음이, 참을 수 없는 방귀처럼 얼굴로 세어 나왔다. 바삐 표정을 고쳐 잡았다. 입꼬리를 5mm만 올려, AI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아직도 꾸무럭 대며 지갑을 뒤지고 있다. 그런 그를 쳐다보지 않기 위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던힐 라이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빨리 나가길 바라며, 숨도 안 쉬고 연이어 말을 이었다.

 #삑- 사천 오백 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친절히 인사한 게 전부였다. 친절한 목소리로 담배를 판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들에겐 단순한 친절함이 아니었던 걸까. 두 달 동안 일주일 내내 편의점 일을 봐주기로 하였다. 일을 시작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친해질 요량으로 살갑게 말을 걸곤 하였는데, 그중 몇몇은 단순한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들에게 내가 미혼(未婚)이라는 이야기가 알려지고 난 후부터, 그들의 행동은 더 노골적이 되었다. 움직임의 소리를 들은 좀비처럼 계산대 앞에서 희번덕거렸다. 

 쭈뼛대며 카드를 지갑에 욱여넣는 저 늙은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모습만 보면, 이미 나와 몇 번의 연애 끝에 실연당한 꼴을 하고 있다. 싫다고 바로 거절했던, 가게 아주머니 소개팅 주선 인물이다. 껄떡대는 목소리가 끔찍해도 넉살 좋게 대응해주곤 하였는데, 더 이상은 무리였다. 이후 로봇같이 상대하기 시작하니 바로 저런 꼬락서니를 하는 것이다. 고개를 외로 꼬고 자리를 벗어나질 않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은 분노가 푸들푸들 온몸에 끓어올랐다.     

# 차라리 술 먹고 진상을 부려. #경찰에 신고나 해버리게.



 남자를 향하여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육점 남자는 계속 무언가를 더 살 것 같은 액션을 취하며, 계산이 끝나도 자리를 나서지 않고 있었다. 마침 동네 알코홀릭 4인방 중 한 명이 들어왔다. 반가웠다. 그는 아침 10시부터 소주와 스크류바 하나를 들고, 관리소 남자 뒤에 줄을 섰다. 묵히고 묵혀진 해장되지 못한 술 냄새가, 늙은 남자를 지나 나에게 까지 풍겼다.

 그 둘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재빨리 소주와 스크류바를 계산하고  쫓아내듯 그들을 향해 ‘안녕히 가세요’를 외쳤다. 예전에 무서워서 못 가던 옷가게 여주인 목소리가 내 목에서 나왔다. 결국 그들은 문을 열고 나가, 가게 앞 파라솔에 앉았다. 가게 문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밖에서 보이지 않는 계산대 옆 구석에 다리를 펴고 앉았다.

#어서 가세요   

 


 그의 행동은 스토커 전조증상 같았다. 가는 곳곳마다 등장하는 그를 보면 끔찍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9시에 한번 나올 때마다 앞에 나와 앉아 있는 그가, 끔찍했다. 결국 더 먼 수거함에 돌아갔다. 나를 보고 전전긍긍하는 그의 모습에 잠깐 안타까운 마음도 스쳐가긴 했지만, 순간일 뿐이었다. 시골의 한참 늙은 총각이라 생각하면, 측은지심이 든다. 그들이나 나나 다를 게 뭐 있냐는 동질감마저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계적인 측은지심과 동정심이 튀어나오면, 같이 연결되어 있던 의외의 생각들이 연달아 따라 나온다. 마치 생선 뱃속을 가르면, 커다란 내장에 붙어 있는 다른 장기들이 물컹물컹 딸려 나오는 것처럼.

 ‘여자는 좋아해 주는 남자를 만나야 잘 산다’는 되도 않는 이야기가 덜컥 미끄러져 나왔다. 몸서리쳐진다. 그러자 또다시 개연성이라곤 눈곱 만치도 없는 ‘그러니까 결혼을 못하지’라는 생뚱맞은 생각이 튀어나온다. 더 진저리가 쳐진다. 이렇게 머릿속이 너저분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실체도 없는 누군가를 향해 화를 낼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르게 된다.

#시발. #저렇게 오장육부가 쉰내에 절어 있는 사람과 사귈 바엔!!!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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