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편
바이털 사인 즉, 활력 징후는 인간이 신체적으로 살아있음을 혈압, 맥박, 호흡, 체온으로 보여주는 기본적인 증거이다. 이 신체적 상태를 기초로 모든 간호 및 의료행위의 판단 근거가 된다.
혈압은 높은지 낮은지, 맥박수는 정상범위에 있는지, 호흡의 양상은 변화가 있는지, 고열이나 저체온 상태인지 등등 바이털 사인만 정확하게 측정되어도 의료진은 환자 상태의 중요한 임상적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각각의 요소들은 독립적으로도 역할을 하지만 신체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출혈로 혈압이 떨어지면 부족한 혈액량을 보상하려고 심장이 더 빠르게 박동하고 맥박이 빨라지며, 호흡은 가빠지며 산소공급을 늘리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의 신체적 바이털 사인뿐만 아니라, 정신건강 영역에서 바이털 사인의 요소가 되는 것들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정신적 바이털 사인의 요소로 다음 4가지를 소개한다.
정체성(identity : 자아 이해),
병식(insight : 질병 이해),
지남력(orientation : 사람, 장소, 시간에 대한 인식 : 환경 이해),
유대감(rapport : 치료자와의 이해)
첫째, 정체성(identity : 자아 이해)은 어린 시절 성장 과정에서 자기 인식과 주 양육자, 타인과의 상호관계로 형성된다. 정체성은 인간 존재의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정신적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치명적으로 영향을 받아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일례로 우울증, 조현병, 인격장애 등 정신병리가 생겼을 때 환자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혼란스러워하거나, 부정하는 마음, 과대하게 생각하는 등 본래의 자기 모습에 초점을 맞추기가 어렵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존재감이 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과장되고 거짓된 망상에 사로잡혀 사건·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때론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과 기억상실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만큼 정체성은 정신심리적 건강상태의 중요한 지표가 되며, 대상자의 건강한 정체성 유지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한다.
둘째, 정신적 바이털 사인으로 병식(insight : 질병 이해)이다.
신체적 질병과 다르게 정신적 질병은 처음에는 질병을 부정하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정신질환의 경우 출혈이나 골절,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마음이 아프다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춘 정신분야 의료인이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데, 문제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전문가의 의견을 부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현실이다. ‘그럴 리가 없다’든지, 착각이라든지, 오진이라든지…. 오히려 병을 가리고 부정하기 위한 많은 근거로 방어하기 급급하다. 그러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어떤 병인지 알면 치료 방법을 찾는 길도 좀 더 빠르다.
그러니 질병을 부인하고 치료를 지연시키는 것보다 병식(insight)을 바로 가지고 효과적으로 질병을 치료하자고 부드럽지만,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싶다.
셋째 요소는 지남력(orientation; 환경 이해; 사람, 장소, 시간에 대한 인식)이다.
시쳇말로 ‘현타가 온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이제 무엇을?이라고 혼잣말하면서 현실을 지각하는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간혹 장시간 수술 후유증이나 뇌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일시적인 섬망이 있을 수 있다. 밤과 낮의 구별, 집과 병원의 혼동, 보호자와 의료진을 헷갈리는 등 환자 주변의 환경을 일시적으로 착각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치매와 같이 뇌 기능의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지남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매일 보는 가족에게 ’ 누구세요?’라고 물어보고, 집에 있으면서 본인의 집에 가야 한다고 밖으로 탈출하려고 한다.
지남력의 혼돈이 왔다는 것은 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 환경의 혼돈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지남력의 요소는 정신적 건강의 중요한 지표이다.
마지막으로 정신적 바이털 사인의 요소는 라포(rapport, 유대감 : 치료자와의 이해)이다.
앞서 3가지는 대상자 개인 관점의 바이털 사인이라면, 라포는 대상자 개인에게서 확장된 관점의 요소이다.
신체적 바이털 사인에 문제가 생기면 의료진은 산소, 약물을 투여하거나, 신체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더 나아가 수액을 준비하고, 검사를 하고, 수술을 하는 등의 처치가 시작된다.
이를 정신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라포는 유대관계라고도 번역하여 사용하는데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치료적 선로를 개설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정신적 질병도 투약하고, 시술, 각종 정신 치료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그 모든 처치 전에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라포가 형성되어야 한다. 자갈을 평평히 깔고 차곡차곡 놓여있는 선로들처럼 환자와 치료진 사이를 오가는 회선이 견고하게 형성되는 것은 정신 치료의 성패를 가른다.
마음건강, 정신건강을 위해 살펴봐야 하는 요소들은 다층적, 다면적이다.
이것을 위에 제시한 4가지(정체성, 병식, 지남력, 라포)로 살펴보았고, 자아 이해 · 질병 이해 · 환경 이해 · 치료자와의 이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해하다. Understanding.
어느 작가는 이 단어를 Under + Standing으로 나누어 '낮은 자세로 서 있는다'라고 풀이하는 것을 들었다.
마음의 치유가 시작되는 표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