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런두런 Sep 14. 2023

그 한 사람

마음 이해하기

우리는 마음이 어려울 때 누군가의 관심과 위로를 원합니다.

또 구체적 해결 방법과 도움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이 딱 닫혀 있을 때는 그 어떤 조언도 귀담아듣지 않으며, 객관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때도 종종 봅니다.

왜 그럴까요?


과거 상처로 마음의 문이 닫혔을 수도 있고, 고마운 분일지라도 지금의 아픔과 고통에 근원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척 아쉽고 마음이 아픈 일이지요.

위로를 건네는 말에 “네, 고마워요”라고 표면적으로는 반응하지만 우리는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위로도 오가지 못했다는 것을.     


한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일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서로 의미 있는 관계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오랜 인연이 필수는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사고 현장이나, 천재지변과 같은 일상적이지 않은 순간에는 처음 만난 사이일지라도 너무나 쉽게 마음을 열고 실질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가 아니라 우리 매일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질병, 인간관계 갈등, 직장 스트레스, 진로 취업 문제, 여러 상황의 단절 등등에서 아는 사람은 있어도 좀처럼 의미 있는 ‘그 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문에서 고독사의 기사를 어렵지 않게 봅니다. 극심한 경제난이 이유인 경우도 있지만 질병이나 가족 또는 가까운 인간관계의 단절이 원인인 경우도 많습니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혼자 떠나다니….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동정심이 저절로 생깁니다.     


다시 이야기를 돌아가서 서로에게 의미 있는 ‘그 한 사람’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몇 가지 생각해 봅니다. 

먼저 자신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자기 이해’라고 하지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적는 것이 너무 추상적이라고 느껴진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oo이다.’, ‘내가 잘하는 것은 oo이다.’, ‘지금 나는 ooo 어떤 문제가 힘이 들고 기분은 oo이다’라고 표현해 보는 것입니다.      

‘나는 oo 한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oo이다.’
‘내가 잘하는 것은 oo이다.’
‘지금 나는 ooo 어떤 문제가 힘이 들고 기분은 oo이다.’     


이렇게 3~4 문장이라도 구체적으로 적어본다면 현재의 나의 상태에 대한 인식이 작동하게 됩니다. 

자기 이해와 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상대방의 관심과 도움을 알아차리는 선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상태를 자신도 혼란스럽다고 한다면, 타인과의 공감과 교류는 어렵고 비효과적입니다. 그래서 먼저 지금 나의 상태에 대한 이해에 집중해서 자기 모습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다음 도움을 주고 싶은 상대방의 입장일 경우 당부하고 싶은 것입니다.

관심의 밀도와 도움의 거리, 말투의 온도 등 ‘대화 태도’를 잘 맞춰달라는 것입니다. 밀도, 거리, 온도 등등 마치 과학 수업 시간에 보던 단어들이 많이 나오네요. 

의미 있는 관계에서 우선시되는 것은 나의 뜨거운 열정이 아닙니다. 

사랑을 많이 주고 싶다고 상대방이 모두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때론 거절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와 나 사이의 편안한 거리는 얼마인지, 내가 쏟아부어 주고 싶은 애정의 밀도는 어떤 진하기인지, 따뜻한 차 같은 위로를 좋아하는지, 정신이 확 깨는 냉수 같은 조언을 좋아하는지 건네는 말투 온도도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와 나 사이의 편안한 거리는 얼마인지
쏟아부어 주고 싶은 애정의 밀도는 어떤 진하기인지
따뜻한 차 같은 위로를 좋아하는지, 정신이 확 깨는 냉수 같은 조언을 좋아하는지 건네는 말투 온도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관계 맺기'에서 요즘 특히 더 많이 느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공감, 경청, 진심, 이해 등등 의사소통과 인간관계의 기술에 대한 사회적 필요와 대중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심리 전문가가 아니라도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참 좋은 시대 현상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감정마저 경제사회의 소비제품으로 전락하는 것 같습니다.     

 

‘(값을 지급한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게요’

‘(돈을 내었으니) 무조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 주세요’ 등의 인상이 풍기는 인간관계가 목격됩니다. 특히나 비대면으로 SNS를 통해 즉각적 반응으로 소통되는 경우는 앞서 언급한 ‘자기 이해’와 ‘대화 태도’가 없이 접속되다 보니 오가는 대화가 상투적이고 이미 정해진 대화 코스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구나…. 비용을 내니(내가 밥을 사니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구나’라는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런 껍데기만 있는 듯한 관계는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회복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제안하는 것은 앞서 말한 ‘자기 이해’와 ‘대화 태도’를 꼼꼼하게 먼저 실천하고, 사람의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격언을 진중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떠세요?

'나에게 의미 있는 그 한 사람' 또는 '내가 의미 있는 한 사람이 되기'를 함께 실천해 보실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