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나마의 병원이야기

by 삐아노



해외에서 살게 된다면

알아봐야 할 것들이 많다.

치안, 학군, 주거생활, 물가, 언어 등.

그리고 필수적인 사항으로는 '의료'가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선진국이다.

실력도 뛰어나고 위생도 철저하며

집 앞 어디든 내과, 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재활의학과 등 다양한 전문의의 병원을 저렴한 비용으로 당일에 방문할 수 있다.

이게 얼마나 훌륭한 메리트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껴진다.



나는 해외에서 병원에 가 본 기억은 딱 두 번인데,

이탈리아 로마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응급실 간 거랑 다음 날인가 깨질듯한 두통과 목통증에 일반병원에 가 본 경험이다.


일반병원은 좀 충격적이었다.

달랑 책상 하나에 컴퓨터 한 대, 그리고 장비라곤

무릎 반사용 망치뿐.

진료비만 180유로인가 나왔었다.

각종 약값도 100여 유로.


나중에 한국에서 재활의학과 가서 자초지총을 이야기하니

선생님이 '하... 유럽은 진짜' 하시면서 한숨을 푹 내쉬셨다.




파나마도 비슷하다.


작년에 한창 음악작업할 때

헤드폰을 계속 끼고 있어서

귀를 습관적으로 자꾸 만지게 됐다.


어느 날,

귀가 너무 미친 듯이 아프고 속에 염증, 고름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약을 사서 넣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근처 병원에 예약을 했다.

식염수 같은 것으로 귀청소를 하고 약을 처방해 주는데만 120불이 나왔다.



뭐라고!?!?



약값은 80불이었나.



병원비에 제대로 현타가 왔다.

검색해 보니 매일 청소하러 가는 게 좋다던데

금액을 보니 갈 수 없었다.

그리고 계속 약을 넣는데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


심지어 잘 안 들리기 시작했다.

고름에 의해 귀가 막혀 그런 건지 청력 이상인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을 마구 찾아보니

무서운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청력 저하로 청력 손실...

며칠 안에 스테로이드 안 먹으면 영영 회복 불가 등등.


온라인 테스트로 청력 검사를 해보기도 했다.

점점 무서워졌다.



일반 병원을 예약하면 기본 1~2주일 이상 걸리고

청력테스트가 있을 리 만무하여

청력 검사가 있을 법한 대형병원

응급실로 뛰어갔다.



결론적으로 응급실엔 이비인후과 의사도 없었고

이틀 후인가 빠른 예약만 잡아주고

약만 처방해 주고 끝이었다.

응급실비 60불인가. 약값 항생제 8알 60불.

(한국에선 개당 천원도 안 한단다.)


집에 돌아오고

약 먹고 이틀 후 진료를 갔다.


여기 병원들 특징은

의사 혼자 진찰도구를 준비하는데

그것도 미리 세팅해 놓는 게 아니라

환자가 오면 그제야 주섬주섬 카메라를 켜고

각종 도구를 꺼낸다.

장갑 낀 손으로 리모컨이니 서랍이니 이것저것 만져댄다.

장갑은 본인 손 보호용인가 싶은 느낌.

이 모습이 상당히 비전문적으로 보이고

감염과 실력에 대한 의심이 증폭된다.




이 나라는 모든 검사를 '실험실'에서 따로 한다.

타 기관에 의뢰서를 써주면 환자가 직접 연락해 약속을 잡고 검사를 받고 검사지를 받아서 의사한테 가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며칠에 걸쳐 청력 검사도 진행했다,



귀는 정말... 못해도 열 번 재발했다.

하도 병원을 많이 가니 이젠 약만 사서 조짐이 보이면 넣는다.

엊그제부터 다시 시작되어 넣고 있다...




한창 1집 작업으로

하루 12시간씩 미디만 며칠씩 하던 때에

수십 년 동안 칼주기였던 생리를 2주 만에 또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문제였던 거 같다.



산부인과를 예약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환자가 가니 그제야 기계 연결하고(그래도 다행히 초음파가 있었다!)

주섬주섬 장비 꺼내고

장갑 낀 손으로 이것저것 버튼, 리모컨, 서랍 만지고..

그 손으로 진료를... 했다. ㅠㅠ


위생관념 어디...?


진료결과도 좀 읭스러운 게

스트레스 상황이 명확한데

자궁경부암 검사를 했다.


으음..

다행히 경부암 결과는 이상이 없었지만

또 뭐 검사하러 오랬는데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최근에 이부프로펜과 비타민C로

급성 위염, 위경련이 심하게 왔다.

겨우 4일 뒤로 예약을 잡고

스페인어로 종이에 미리 증상을 자세히 써놓고 갔다.



진료실을 여니

응? 의사.. 맞나??

형형색색 화려한 옷에 굵고 긴 웨이브, 아주 진한 화장!

의사인지 랩스타인지 모르겠는 분이 있었다.



내 스페인어 글을 보더니 이해 못 하겠다며

(챗 지피티로 써간 거다!!)

대충 읽더니

30일 치, 5일 치 약처방과 실험실에서 대변검사로 헬리코박터균 검사를 하라며 한 달 뒤에 오라고 했다.

진찰은 손으로 몇 번 꾹꾹 눌러본 게 끝.


현타가...




여기서 끝이 아닌 게

집에 와서 약을 먹는데

크기가 너무 큰 거다. 의아했는데

설명서를 안 읽은 나의 잘못.


삼키자마자 후회했다.

진짜로 식도에 걸려서

식도가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엄청난 통증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응급실 가려고 옷을 대충 입었는데

좀만 움직여도 극심한 통증에

직원한테 구급차 불러달라 할까 생각하면서

물을 2리터 정도 마셨다.



겨우 내려가고

잔흔통이 있는 식도를 부여잡고

갑자기 서러움의 눈물이 나올락 말락.

하필 남편도 야근 중이었다.



해외에서 이게 뭔 개고생이란 말인가.



그 후로 몇 시간 계속 통증이 남아있었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수업을 가야 했기에

아픈 식도를 부여잡고 갔다가

약국에 들러 약을 샀다.



근데

약을 잘 못줌.

환 to the 장

쿵덕 쿵 환! 쿵 더더덕 장!

환 자라자라자라 장!


장에 대한 약을 줬다...ㅎㅎㅎ


남편한테 사 와 달라고 부탁해서 맞는 약을 먹게 됐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휴가차 유럽에 와있다.


근데 남편이 자다가 팔꿈치로 내 눈을 때렸다.

유럽 병원에 갈 수도 없고.

파나마 가면 안과를 가서 망막 검사를 해보고 싶은데

벌써부터 신뢰할 수가 없어서 걱정이다..











keyword
이전 22화파나마의 치안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