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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요태기

by 삐아노


파나마에 산지 어언 2년이 되어간다.





파나마는 물가 편에서 썼듯 외식비가 무지하게 비싼 나라다.

밖에서 먹으면 2인에 기본 $70이다.

즉 10만 원.

삼겹살 등 고기라도 먹을라치면 $100이 우습게 넘어간다.

배달은 40~50$ 정도.



그렇다 보니 돈이 아까워서 밖에서 뭘 못 사 먹는다.

그 뜻은!? 전부 가내수공업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



나도 한국에서 일하고 집에 오면

너무 지치고 피곤하여

뭘 해먹을 힘이 나지 않았다.

수업을 7~8개 연이어하고 온 날은

엄마가 해준 밥을 먹거나 뭘시켜먹곤 했다.



그걸 아주 잘 알기에 힘들게 일하고 온 남편 저녁은 꼭 영양가 있게 잘 차려주려고 하는 편이다.

밥도 백미가 아닌 현미+렌틸+병아리콩을 넣어 짓고

탄, 단, 지, 섬유질 모두 있는 식사를 꼭 차린다.



그러나

밥을 짓고

채소를 씻어 샐러드를 만들고

단백질 메인 메뉴를 만들고

국을 끓이는 이 짓을 매일 하다 보니

주기적으로 요태기가 찾아온다.


요리 권태기!


라면을 먹어도, 뭘 시켜 먹어도 꼭 오이무침이나 무생채, 파프리카무침 등 곁들여 먹는 음식을 만들어야 하니 요리를 안 한 날은 하루도 없다.



우리나라처럼 밀키트도 없고

샐러드 같은 즉석식품류는 너무 비싸고

반찬가게는 당연히 꿈도 꿀 수 없다.



차 끌고 여기저기 마트 들러서

장보고 들고 와서 냉장고에 착착 정리하고 식세기 그릇 꺼내어 정리하고

메뉴 고민하고 고기류 해동하고 채소류 일일이 손질하고 양념 죄다 꺼내어 요리하고-

차리는 데는 몇 시간인데 먹는 건 10분이니 더욱 허무하다.

(남편은 먹고 나면 6시간은 배부르니 의미 있다고 하지만.)



요리하고 나면 또 부엌은 바닥부터 난장판이 되어있다.

그릇 부엌으로 옮기고

남편이 식세기에 그릇 넣는 동안

양념류 정리해서 넣어두고

식탁 닦고 부엌 바닥, 싱크대 닦고 등등.

요리하고 먹고 치우기만 해도 기가 쭉쭉 빨린다.



이걸 매일매일

2년 가까이하고 있으니

주기적으로 지겨움이 찾아올 만도 하다.



게다가 다치는 일 또한 잦다.

여기 사는 분들은 부엌일로 한번쯤은 다들 응급실을 가셨다.

감자칼, 채칼, 식칼, 화상 등.

나의 경우 경미한 화상은 정말 많이 입고 상처도 많이 생겼지만

아직까지 큰 부상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어쨌든-밥을 하고 있노라면

어릴 적에 밥하고 청소하는 집안일은 중요치 않은 허드렛일이라는 인식을 주입받아서 그런가 나도 나가서 돈 벌고 싶지 밥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그래도


남편이 요리의 힘듦을 잘 알고

뒷정리를 도맡아 해 주며 주말엔 같이 하기도 하고

자기가 버는 돈은 함께 일구고 있는 거고

항상 맛있다고 칭찬을 가득해주기에

요태기가 와도 어찌어찌 또 지나가고 있다.



결국 열심히 돈 버는 이유는

먹고살려고 가 아닌가.




오늘은 또 뭘 먹는 담.




삼겹살 파티. 나가서 먹으면 최소 $100. 노동력을 들여 1/5수준으로 줄였다. 예이!
생일케이크도 직접 만들었다. 헥헥


1년 차 때는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지금은 거의 찍지 않는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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