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지우

겨우 빠져든 선잠조차 곱게 들지 못한 것일까. 어쩌다 두 눈이 트여 사방을 둘러보니, 높거나 낮은 억새들이 옅은 바람에 위태롭게 휘날렸으며 잔디밭이 푸르지 않고 누렇게 죽어있었다. 사람의 흔적은커녕 체향조차도 맡을 수 없었다. 억새 섞인 평원이 사방으로 넓게 펼쳐졌다. 두 손을 가슴에 얹어 곱게 모아 쥐고 정처 없이 느리게 걸었다. 끝없이 걷고 걸으면 무언가 나올 것만 같았다. 아니면 그 사이에 운 좋게도 침대에서 낙상하여 이 빌어먹을 꿈에서 퍼뜩 깨어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인 것을 안다. 의미 없는 상상을 대강 구현하여 만든 어떤 세상임이 분명했다.

평원을 가로지르고 질긴 억새를 짓밟으며 걷는 동안 이따금씩 지빠귀가 하늘로 높이 솟아나 재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멀리서 까치가 서럽게 우는 것을 들었다. 발꿈치가 불편해 구두도 벗어던졌다. 맨발로 걷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늦봄 중 이른 아침 산책을 나가면 줄곧 흔하게 보이는 풍경들이었다. 또한 평원을 생각하면 새들이 저만치 날아가고 날아오는 것은 쉬이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 크게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언젠가 꼭 이런 곳에서 산책을 해보고 싶었던 터라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억새 하나를 꺾어 날카로운 잎과 흩날리는 머릿 부분을 떼어낸 뒤, 머리카락을 지푸라기 엮듯이 질끈 묶어 올렸다. 무엇을 하든 꿈은 나를 더 단단히 붙잡는 것 같았고, 그로 인해 나는 오래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어느 순간 익숙한 냄새가 코끝에 서렸고, 감긴 눈이 풀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걷어치우고, 폭신한 침대 위에 두 다리를 옭아매듯 앉아 눈을 거칠게 비벼댔다. 문득 그 꿈이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려 했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지빠귀와 까치 한 마리씩과 시든 억새와 별 볼 일 없는 평원으로 무얼 나에게 주려 했을까. 오랜 시간 침대에 엉덩이를 비껴 앉고서 곰곰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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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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