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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유감- 2년마다 원룸 바꾼 썰, 삼천보다 사랑한다

슬픔이 이만 날 포기했으면 좋겠다 2화

by 라화랑

이 좁은 집에서 어떻게 2년을 버텼을까. 쓰레기봉투를 바로 갖다 버리지 않으면 쌓아진 이사 박스를 문 밖으로 내놓아야 하는 여기서. 지난 번에는 이사를 어떻게 했더라. 그 때에는 넓긴 했는데 외풍이 심해 오들오들 떨면서 짐을 쌌던 것만 같다. 위반건축물로 찍혀 하루동안 공사한다고 쫓겨났던 상가주택 4층이었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그 전에는, 또 어디서 이사했더라. 그 전에는, 그 전에는.



거꾸로 세 보니 벌써 4번째다. 곧 맞이하는 집은 5번째이고. 매번 원룸에서 다른 원룸으로 이사하는 게 지겹지도 않냐고 아빠가 말하더라고. 나는 대꾸했다.

“안 지겨워서 이사하는 게 아니라, 돈 때문에 이사하는 거야.
내 집 살 만큼의 돈이 없어서. 모으려고.”

끊고 나니 서럽더라고. 난 대체 언제쯤이면 좋은 집에 살 수 있나. 정원 한 켠에는 상추와 쪽파가 자라고, 베란다를 통해 들어온 집 안에는 화장실 두 개쯤 있는 따뜻한 집. 거실과 방 두 개가 있는 집. 더울 때 에어컨을 양껏 틀고 추울 때 난방 보일러를 25도로 맞춰놓을 수 있는 집.

내 4번의 이사는 모두 최악을 피하려는 몸부림, ‘이것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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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집은 월세가 많이 나왔다. 이틀만에 지방에서 경기도 월세를 구해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급하게 구했기 때문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여자애가 살 수 있을만한- 깨끗한- 당장 입주 가능한- 풀옵션이라 몸만 들어와 살 수 있는- 원룸은 비쌀 수 밖에 없다. 이 집에 나를 덩그러니 놓고 부모님은 당부 혹은 다짐의 말을 하고 돌아갔다.

“이게 내가 해 주는 마지막 네 뒷바라지다.”



500에 45, 당시 경기도 시골 원룸치고는 비싼 가격이었다. 월급이 적은 내게는 공과금 포함 50만원 남짓의 돈을 매 달 내는 게 고역이었고. 다음 집은 꼭 월세 적게 나오는 데로 가야지, 다짐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집은 전세로 구했다. 전세 6000.

나보다 5년 어린 오피스텔의 한 원룸으로. 6000을 다 모으질 못해 4천만원은 은행빚을 졌던 걸로 기억한다. 월세를 피해 들어간 그 곳은- 좁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7평 남짓한 곳이었는데, 처음에 들어갈 때와 달리 점점 살면서 살림살이가 늘어날수록 내가 발 디딜 곳이 없어져 갔다. 마지막 6개월 정도는 밥도 침대 위에서 먹었다. 그리고 관리비가 어마어마했다. 오피스텔이라는 곳은 관리비로 10만원씩 꼬박꼬박 내야만 하는 곳이더라고. 다음 집은 꼭 넓고 관리비 저렴한 곳으로 가야지, 다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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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구한 세 번째 원룸, 무려 8평 반 정도 되는 상가주택이었다.

건축법상 실제 거주가 불가능하지만 꼼수로 원룸을 운영하는 70대 집주인은 눈빛이 번들번들했다. 건물 맨 위층을 옥탑방으로 만들어 본인이 사장인 사업장도 있는 사람이었다. 드넓은 원룸을 모조리 활용하리라 다짐했던 나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미친 듯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기 때문이다. 건물 밖의 바람이 내 원룸을 타고 맞은편 원룸으로 횡단을 하는 것만 같더라고. 보일러를 틀면 따뜻해지는 곳만 골라 생활을 하다보니, 실제로 쓰는 공간은 더 좁았다. 다음 집은 꼭 최근에 지어져서 외풍이 없는 곳으로 가야지, 다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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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게 지금의 원룸이다. 내일모레 이사 나갈 집. 제일 젊은 집. 지어진 지 6년이 된 집. 임대사업자인 건물주가 팔 수 있는 시점인 8년이 되자마자 팔아버리겠다고 선언했던 집. 오피스텔이라 관리비도 12만원이나 나가고, 7평보다 약간 작아 답답해 미치겠지만, 화장실에서 씻을 때 더 이상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여름에는 펑펑 에어컨을 쏘지 않아도 시원했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24시간 틀지 않아도 웬만큼 따뜻했다. 그런 원룸에서 나는 또 왜 대체 이사를 결심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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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처음으로, 내가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다.

지금 내가 디딘 풀잎이 불편해서 메뚜기처럼 냅다 눈에 보이는 다른 풀잎으로 퐁- 튀어가는 게 아닌 뜀박질은 처음이라- 나는 두렵다.

한 번 더 원룸에서 돈 아끼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닌가, 그렇게 내가 모은 돈을 내년부터의 2년에 모두 갈아 넣을 필요가 있는 건가, 나는 이렇게 돈을 굴리지도 못하고 현재 삶에 매몰되어 평생 전세만 전전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들.


그런 주제에 이삿짐을 싸면서 또 완전히 즐겁지도 않다.

어차피 엄청 넓어지는 것도 아니라 이 물건들 다 처분하고 가야 하네, 내 마음대로 가구 배치같은 거 할 수 없는 애매한 집이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적당히 만족하면서 살아야 해, 하는 불만.




인간답게 30대를 시작하겠다는 계약할 때의 큰 다짐이 와르르 무너지는 요즈음.

두려움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두렵고 무서우면서도 나를 믿고 하는 것, 그게 진짜 용기라고 하더라고.

전세금으로 큰 돈을 넣어 그간 돈을 못 굴릴 게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부자 남편 만나 한 번에 30 몇 평 사는 동기들만큼 신축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 짜증도 나지만, 새 집에서 25년을 살아갈 서른 한 살의 나를 믿어보려고 한다.


이전보다 쾌적해진 환경에서 나를 위해 오늘을 살아갈 나를,
나는 무척이나 응원한다. 내가 넣은 전세금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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