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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Jan 15. 2024

사랑이 많은 나를 사랑하여

(7) 애정결핍이 아닌, 사랑이 많은 나를 어느 날 사랑하여 - 일랑

갑자기 생각하게 됐다.

나는 그저 사랑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애정결핍이 아니라.

하루죙일 뒹굴거리다 억지로 쓰레기 봉투를 사고 잠옷 차림으로 후딱 들어오는 날- 귀찮다며 씻지도 않아 꼬질꼬질한 몸. 평일이라면 건물 안에 갇혀 몰랐을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이어폰조차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순간. 주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복작거리는 시간.

어느 10월의 일요일 오후.

나를 괴롭히는 건 언제나 나였다. 사랑, 마음, 감정에 있어서 특히 더.

28년동안 내가 내게 내린 병명은 [애정결핍]이었다. 그리고 한 번도 마음 바뀔 일 없이, 굳건히 믿었다.

 

사랑과 애정, 사람간의 마음에 늘 약했기 때문이다.

늘 내 모든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술에 취한 어느 날 밤- 곁에 있는 사람을 그저 붙잡아두고 싶어 '사랑'이라고 코팅해버린 성급한 취기. 친한 친구로 이미 한 켠을 내어준 누군가가 상처 내던 손을 견디던 내 가슴- 그리고 그 모든 걸 특별한 우정이라고 섣불리 떼어놓지 못하던 미적지근한 나의 태도.


부단히 노력했다. 사랑스러운 막내딸이, 활발한 친구가, 싹싹하고 살가운 직장 후배가, 다정한 인생 선배가 되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남은 기력이 없어진 나는 스스로에게 줄 애정의 샘 저 밑바닥은 가뭄이 일었을 것이라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다.그렇기에 내 마음같은 건, 쳐다볼 생각도 없이 살았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애정결핍이라 느꼈다. 남들에게 과도한 마음 표현, 칭찬, 예쁜 말들을 골라하려고 애쓰는 내 모습은 마치- 아무도 시키지 않은 극에 오른 어릿광대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꼭- 스스로 채우지 못하는 사랑 항아리를 남에게 막아달라 칭얼거리는 콩쥐같잖아. 자조했던 지난 날들.


그랬던 내가, 별 일도 없이- 아무 사건 없이- 깨달은 바 없이- 그저 느끼게 됐단 말이다.


나는, 어쩌면, 잘못된 진단을 받은 환자가 아닐까 하고. 


사실 나는 애정이 궁핍해 밖에서 구걸하는, 사랑 고갈 환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 의사도 나고, 환자도 나기에 나는 내게 묻는다.

'너, 진짜 아픈 것 맞아? 마음이 아픈 애 치고는 들려오는 말들이 심심치 않던데?'

돌려 감기를 해봐야겠다. 

전 날이라면 뭔가 단서가 있을 수도 있다. 나도 내가 왜 갑자기 이렇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단 말야. 재빨리 어제를 회상한다. 어제는- 몇 년동안 알던 친구의 결혼식 날이었다. 지난 술자리에서 갑자기 취한 나를 다들 걱정하며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몇몇의 지인들이 모였다. 아름다운 신랑과 신부가 꼭 서로를 닮은 미소를 지으며 행진을 하고- 나는 그들의 퇴장을 핸드폰에 담는다.


그러다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단체 술자리에서, 내가 옆에 있던 여자 동생을 그렇게 끌어안고 있었다고. 그렇게 '만질 수가, 만질 수가' 없었다는 부끄러운 이야기. 맞아, 나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유달리 귀엽고 챙겨주고 싶은 여자 친구가 있기에 쓰담쓰담을 여러 번 해주었던 것도 같고 어깨를 토닥였던 것도 같고. 너 예쁘고 소중한 존재라며 눈을 맞췄던 것도 같다.

그게, 뭐?

불과 며칠 전이었다면 또다시 그놈의 '자기혐오 동굴'에 들어가야 할 내가 두 손을 어깨 높이로 든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 하고는 만다. [또 다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고 말았어.] 라는 이름의 자기혐오 동굴은 불을 켤 수 없다. 왜냐하면 나, 그 친구에게 어떤 말을 들었거든, 이미.


[언니는 애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라서 참 좋아. 나를 이만큼 사랑해주는 게 느껴져서 좋아.]라고.

아아, 또. 또 있다. 비슷한 말 또 들었다.

[일랑이는 그간 함께하며 비타민 같은 존재였달까. 우리 팀에 활력이 되어주었어. 늘 밝은 얼굴로 분위기를 띄워줘서 고마워.]

그리고- 또 무슨 말도 들었냐면

[일랑아, 너는 늘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구나. 주저 없이 네 마음과 사랑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게 난 멋지다고 생각해. 자존감 없으면 못할 것 같거든. 나라면- 그렇게 자신 있게 날 사랑해달라는 말이라던가 네가 마음에 든다, 착하다, 예쁘다는 말 같은 거 쉽게 못할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되감기를 하다 보면- 나 저런 말 수도 없이 들었다. 분명히 어렸을 때부터 성장하며 성격이 무척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최근 6개월간은 나 자신이 아예 깨부셔지고 다시 조립하는 기분조차 들었는데, 그 꼬꼬마 시절 옛날 옛적에도 재조립되어 더욱 무적이 된 지금도 내가 듣는 말은 비슷하다.

-너, 밝아서, 사랑을 표현할 줄 알아서, 맑아서, 칭찬을 잘 해서, 잘 다가가서,
대단해.


계속 들었던 말이고, 수도 없이 했던 경험인데 받아들이는 기분이 다르다.

이전이었다면- 또 저 사람들 굳이 내게 할 말 없어서 저런 말 억지로 한다고 생각하거나 저렇게 말 해놓고 집에 가서는 나 시끄러웠다며 욕할 거라고 꼬아서 생각했을 터. 왜 스스로를 꼬게 되었냐 묻는다면 - 칭찬을 곧이곧대로 못 받아들이냐 화 낸다면 - 양해를 구한다. 나는 내 마음이나 감정을 꾹꾹 누르며 통제하던 마음 속의 아이가 무척 힘이 셌기 때문이다.


"어딜, 그런 칭찬 받았다고 기분 좋으면 안 돼지! 넌 좀 조용해질 필요가 있어. 다 네가 시끄럽고 나댄다고 하는 말이잖아. 그러니 너 저 칭찬 진짜로 듣고 방방 뛰면 안 된다?"

그렇게 마음을 막던 마음 속의 프로 통제꾼은, 약간 힘을 잃었다. 정확히는 마음의 권력이 기울었지. 이제 내가 더 귀하고 존중하는 쪽은 통찰하는 네가 아니라 누군가의 웃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나이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그렇구나. 나 이제 알았다.

나는 애정결핍이 아니라
그냥 사랑이 많은 사람이 맞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통제꾼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거다.

[너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웃으면서 마음 다 주고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표현하다 보면 언젠가 크게 다친다? 너 옛날에 그런 적 많았잖아. 그러니까 내 말 들어. 너 그렇게 사랑 퍼다주는 버릇 갖는 거 아니야. 왜냐하면 어, 너는, 그래. 너 애정결핍이야. 네가 주는 애정은 모두 네가 돌려받고 싶어서 떼쓰는 5살 아이의 애정 투정일 뿐이야. 너 딱 고대로 돌려받지 못하면 얼마나 아파하니?]

나 이제 최면에서 풀려났다.

그래서 오랫동안 최면을 거느라 팔에 쥐나도록 목걸이를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며 시선을 빼앗으려는 마음 속의 아이에게 말한다.


[나 괜찮아. 네가 그동안 나를 지키려고 애써 준 거 알아. 고마워. 덕분에 이 나이 되도록 위험한 일 겪지 않고 잘 살았어. 안전했거든. 네가 만든 마음의 집이.
근데 말야- 나 이제 그 마음의 집 필요 없어. 그 안은 너무, 어두워.
나 아파도 돼. 나 다쳐도 돼. 사랑 표현한 거 안 돌려받아도 돼. 안전하지 않아도 돼. 다칠게. 그리고 상처에서 회복하는 법을 천천히 배울게. 그러니까- 나 이제 원래 많은 사랑을 갖고 태어난, 사랑의 그릇이 무척 가득차게 큰 사람이라는 거 알게 해주라.]


통제하던 아이가 손을 슥 내린다. 그리고 나를 보며 조심스레 묻는 거다.


[너 진짜, 상처받고 아파도 괜찮겠어?]


응. 나 진짜 괜찮겠어. 안괜찮으면 그 때 와서, 네가 호되게 나 회초리로 치던 것처럼 다른 사람 앞에 대고 욕해줘. 그 사람이 정말 별로인 거라고. 나 네 옆에 기대어 후엥 하고 소리 내어 크게 울게.
그래 줄거지?


응. 그렇게 할게.
너도, 고생 많았어.
너도. 너도 힘들었겠다. 말해줘서 고마워.

그렇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마음의 불이 켜졌다.

예쁘기도 하지, 나.

갑자기 생각하게 됐다.
나는 역시,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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