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를 넘다 (상)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은 출발선에 서기

by 시현


"아, 이러면 곤란한데..."


안 그래도 안전히 제한시간 안에

완주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었는데,


이번에 첫 번째로 개최되는 대회라서 그런지

갑작스러운 변화가 너무 많아 당황스러웠다.



D-4, 버스 시간 변경 공지.


숙소에서 대회 출발 시간 한 시간 전

버스 이동으로 안내되어 있었으나,

일괄 5시 30분 출발로 변경되었다.


그러니까 8시에 출발하는 21k 주자들은

현장에서 두 시간을 대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짐 맡기고 몇 개 없는 부스 돌고 나면 뭘 해야 할까.


버스비를 포기하고 차를 가져가야 하나.

고민이 생겼다.


하지만 장거리 운전에 대한 피로도를 낮추고,

버스를 타고 대회장에 가는 경험도 해보자 싶어

일단 버스를 타기로 했다.



D-1, 또 다른 공지.


숙소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종합운동장역 근처 카페에 앉아 있던 중

올라온 공지는 바로 컷오프 타임의 변경.

행사 시작을 약 16시간 정도 남긴 시점이었다.


21k 코스의 경우,

두 시간 안에 6km 지점의 CP(체크포인트)에

들어오지 못하면 컷오프.

그야말로 실격 처리가 된다.


더 이상 코스를 달리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


게다가 한 군데 있는 CP에서

어떤 것을 주는지도 여태 공개되지 않았다.


그걸로 내가 소지할 물과 에너지젤,

그리고 비상식량의 종류와 양을

결정할 수 있을 텐데...



지난번 블랙야크 8km 라이트 트레일런 코스에서는

딱 하나 있는 CP에서 물조차 주지 않았기에,

이번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했지만...

일단 아무것도 없을 것을 대비해 챙겨둔

에너지젤과 미니 약과 대여섯 개를 믿기로 했다.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올랐다.

1인당 2좌석씩이라 여유롭게 앉아 갈 수 있었다.


머리만 대면 잘 자는 편이지만,

어째서인지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해가 지고 지정된 숙소에 도착했다.

폐교를 유스호스텔로 바꾼 곳이라고 한다.

(어두워서 전경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지난번 대회 때 엄마의 코골이로

잠을 아주 설쳤던 기억 때문에,

이번엔 단체 숙소로 가지 않고 별도로 예약해서 혼자 따로 묵었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방에 들어가서 일단 준비해 간 간편식으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방바닥에

내일 대회 때 입을 옷과 필요한 물품을 펼쳐두고,

대회가 끝난 뒤 갈아입을 옷을 꺼내기 쉽게

짐을 다시 꾸렸다.





내일 아침 5시 30분 버스가 출발한다.

4시쯤엔 일어나야 하니 일찍 자야 하는데...


밤 10시에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도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는 "걱정"과 "안심"이 싸우고 있다.


단풍이 예쁘게 들었을 테니

단풍놀이 한다고 생각하고 일단 자야지.

아, 그래도 잠이 안 오네... 숫자나 세어봐야겠다.

하나, 둘, 셋... 서른, 서른하나...





언제 갑작스럽게 잠들었지? 생각하며 눈을 번쩍 떴다.


아직 알람이 울리지 않았지만

이제 슬슬 일어나도 될 시간이다.


매일 아침마다 알람이 울리면

스누즈 버튼을 누르는 나지만 오늘은 다르다.


벌떡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 먹었다.

새벽 4시에 먹는 햇반과 참치라니.


그래도 맛은 있다.

혹시라도 탈이 날까 평소보다 꼭꼭 씹어 삼켰다.


러닝 조끼와 물품은 따로 손에 챙기고,

오늘을 위해 사둔 경량 패딩을 입고 숙소 문을 나섰다.


아주 추운 날은 아니었지만,

11월의 새벽은 확실히 바람이 차다.


현장에 도착해서 밖에서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데 어쩐다.

핫팩이라도 가져올걸. 짐을 너무 많이 줄였나 보다.


버스로 30분간 이동해서 대회장으로 갔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입구.

새벽 6시가 되어도 아직 어두워서

방향도 잘 분간되지 않았다.


일단 대회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무거운 백팩을 내려놓았다.


앉아있으면 체온이 내려갈 것 같아 계속 서 있었다.


천천히 저 멀리서 해가 뜨는 게 보인다.

해 뜨는 걸 본 게 얼마만이더라.


밝아지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보이는 단풍이 예뻤다.

대회 때도 이렇게 즐길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해가 떠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추웠다.

입김도 조금 나오고, 가만히 서 있으면 손이 시렸다.


추위 때문에 경량 패딩을 벗을 수가 없어서

짐 보관을 미루고 가방을 구석에 둔 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몸을 풀었다.





드디어 출발 30분 전.

짐을 맡기고 출발선 앞에 섰다.


혼자 처음 서는 러닝 대회의 출발선.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같아

문득 잠시 외로워졌다.


하지만 외로움 같은 감정을 길게 느낄 새도 없이,

일단 눈앞에 닥친 도전 과제를 해내야 했다.


나만의 첫 번째 도전 과제.

컷오프 당하지 않고 두 시간 안에 CP에 도착하기.

안전하게, 다치지 말고.


일단 그것부터 해내자.


부족한 준비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출발 신호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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