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즐겨야 해
너덜너덜해졌다.
연이은 부상과 각종 질병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환불은 어려워도 출전을 포기할까 싶었다.
어차피 제대로 준비도 못 했는데,
무리해서 나갈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스케줄 조정도 모두 마치고
단체 버스와 숙소까지 예매해 놨다.
이제 와서 돌이키기엔 너무 아깝다.
“그냥, 단풍놀이라도 가자.”
나는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
완주는 못 해도 괜찮다.
언제 내가 문경에서 뛰어볼까.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조금 가벼워졌다.
다시 준비를 시작했다.
식도염은 좀 더 강한 처방약으로
일주일간 복용하니 조금씩 좋아졌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해로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끊었다.
아침에 마시던 모닝커피는
임산부들이 마신다는 커피 대용 보리차,
orzo 오르조로 바꿨다.
자극적인 음식은 입에 대지 않았다.
빈속이 너무 오래 유지되지 않도록
틈틈이 뭐라도 먹으려 노력했다.
식사를 하고 난 뒤에는 최대한 오래 서 있었다.
시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걸으려고 했다.
가슴 타는 느낌이 매일 아주 조금씩 줄어들었다.
물을 삼킬 때의 고통도 사라졌다.
날씨는 다행스럽게도
그전처럼 비가 잦지 않았다.
조금 추워지긴 했지만, 뛸 수는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은 날엔
간단하게 헬스장에서 마이마운틴을 탔다.
한 시간 이상 여유가 있을 때는
뒷산 둘레길을 따라 뛰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대회는 총 21km.
총 상승고도가 1200m가 넘는 코스.
대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부상 없는 완주.
그리고 올해는 일단 참가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DNF(중도포기)를 해도 괜찮다.
다치지만 말고 즐기고 오자.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마음을 조급히 먹지 않기로 했다.
드디어 마지막 테스트.
대회가 딱 일주일 남은 토요일,
봉제산 둘레길을 11km 정도 코스로 돌기로 했다.
이번엔 여러 가지를 처음 시도해 보는 것들이 많았다.
아직은 낯선 접이식 폴.
일단 집에서 살로몬 러닝 조끼에
폴을 다는 방법을 연습했다.
영상을 찾아보니 세네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폴 사용이 낯설고,
내리막에서는 폴이 없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오르막이 힘들 때만 꺼내 쓰기로 했다.
폴을 빼서 길게 펼치고,
업힐에서 사용한 후에는
다시 접어서 조끼에 안전하게 다는 연습을
러닝 중에 계속 반복했다.
이번 대회를 위해 새로 준비한 젤이
나에게 잘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잔뜩 사두었던 요헤미티 에너지젤은 다 먹었고,
좀 다른 걸 먹어볼까 싶어서
엔업 레이스팩과 카페인이 함유된 젤을 구매했다.
이번 대회엔 자잘한 간식거리를
거의 가져가지 않을 예정이다.
그만큼 에너지젤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출발 전 나름의 작전을 세웠다.
양쪽 물통 중 한쪽은 아미노 워터를 탔고,
집을 나서기 30분 전에 아미노산을 먹었다.
달리는 중에는 무카페인 에너지젤과
카페인 에너지젤을 번갈아가며
40~50분 간격으로 먹었다.
카페인이 들어있는 제품은 처음이었는데,
먹은 뒤에 힘이 느껴지는 게 확실히 달랐다.
달라진 날씨에 맞는 옷차림도 중요했다.
적당히 선선한 게 달리기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하게 더위만 해결되면 됐던 여름과는 달리
이제는 날에 따라 추울 수도, 더울 수도 있다.
구간에 따라서, 나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최종 버전은 이렇게 결정했다.
기능성 반팔, 기능성 긴팔,
그리고 아주 잘 접히는 얇은 바람막이에
러닝용 긴바지.
가벼운 보호대를 차고 가려고 했으나,
산 입구로 가는 길에서부터 발이 불편했다.
금방이라도 쥐가 날 것 같았다.
결국 보호대를 풀어 조끼 안쪽에 깊이 넣었다.
보호대 없이 다녀온 뒤 컨디션을 보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대비는 필요할 것 같았다.
발목과 무릎 테이핑을
셀프로 할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11km를 뛰고 돌아왔다.
완벽하진 않았다.
21km를 뛰어본 것도 아니고,
상승고도 1,200m를 경험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약을 먹고, 몸을 관리하고,
틈틈이 훈련하고, 장비를 점검했다.
이제는 마지막 관문.
그날만이 남았다.
문경새재 21km.
완주할 수 있을까.
중간에 포기하게 될까.
모르겠다.
하지만 괜찮다.
그냥 즐기고 오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