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틱 가도의 종착지인, 퓌센 (Füssen) 에는..
영어로는 ‘New Swan Castle’
(새로운 백조의 성) 이라는 의미의..
노이슈반슈타인성 (Neuschwanstei) 이 있었는데,
이 노이슈반슈타인성은,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성을 만들 때-
모델로 삼았던, 바로 그 성이었고!!
수많은 사진과 엽서 등으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성이기도 했지만..
성이 세워지게 된 사연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성이었으며..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큼 너무나 슬픈 성이었다!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루트비히 2세 (1864~1886년 재위) 는..
왕이 된지 불과 2년 만에-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주권을 잃고,
이름 뿐인 허수아비 왕으로 전락하게 되는데..
그런 압박감에, 본래 심약했던 성품이 더해져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그는..
고향 산 속에 틀어박혀 은둔을 하면서,
자신의 환상 속에 더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다.
바그너의 음악을 열정적으로 숭배하고,
강인한 게르만족 신화에 집착했던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오페라 <로엔그린> 중,
‘백조의 전설’ 에서 모티브를 얻어..
산꼭대기에 환상적인 중세의 성을 짓는 일에,
여생의 대부분과 전 재산을 쏟아 부었는데..
그 결정체가 바로,
“노이슈반슈타인 성” 이었던 것이다.
성이 지어지는 동안-
그는 이 성에서 거주하면서,
점점 심하게 현실에서 도피 했는데..
결국 왕위에서도 물러나게 되었고,
1886년에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완성되지 못했고..
이후로 공사가 중단된 채, 그대로 남아서
바이에른 주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유는.. 그 시절에 산꼭대기에 성을 짓는 일이
인부들에게는 정말 너무나 가혹한 요구였기에..
공사를 더 진척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단다;;;
루트비히 2세의 광적인 집착에 대한,
모든 것이 집약된 ‘노이슈반슈타인 성’ 은..
로마네스크, 비잔틴, 고딕 양식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하고 낭만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전체적으로 중세의 성배 전설을 표현하고 있었는데,
세심하게 공을 들인 만큼, 거의 모든 방에서
바그너의 음악에 나오는 인물 테마와..
서구 연애 문학의 전형이 되었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묘사한 조각과 프레스코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놀라운 점은.. 외관은 중세였지만,
현대식 주방에, 중앙 난방, 온수가 나오는 수도,
수세식 화장실에, 심지어 전화까지!
근대 문명의 이기들을 두루-
다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다음은, 작곡가 바그너가
루트비히 2세에 대하여 남긴 말이다.
“그는 불행하게도,
너무나 아름답고 현명하며 숭고하고 군주다워..
나는 그의 생명이 희미해져 사라질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