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그린 May 11. 2024

새벽에 카톡 보라고 하지 마라

터무니없는 요구를 거절하는 법

새벽의 고요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하여 하루를 시작하기 전 내면의 평화도 찾고 개별 성장을 해낼 황금 같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황금보다 더 귀한 시간이 바로 눈을 뜬 직후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새벽 시간을 타인과의 소통, 특히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방해받는 걸 바라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만들거나 참여한 모임은 예외다.)




Banks of the Oise at Dawn (1888)_Louis Hayet (French, 1864 - 1940)




카톡을 비롯해 각종 메시지를 언제 보낼지는 개인의 자유다. 방해되는 시간에는 알람을 끄는 것도 가능해서 메시지를 언제 보낼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새벽에, 그것도 홀로움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에 SNS를 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A View of the Churches of Kalksburg and Rodaun at Dawn (1842)_Carl Franz Michael Geyling




"요즘 내 새벽시간이 완전 엉망이야."



나와 비슷하게 새벽을 즐기는 A양. 하루는 내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지인이 새벽 시간에 자주 연락이 온다는 것이다.



A양은 처음엔 지인의 연락이 반가웠다. 하지만 점점 갈수록 불필요한 잡담이 늘었고, 훈계하는 듯한 잔소리까지 해대는 바람에 부담이 커졌다고 했다. 결국 A는 지인에게 정중하게 선을 그은 다음 다시 이전처럼 새벽시간을 혼자처럼 지내려고 노력했다.



"연락이 안 되니까 서운하다."



하지만 얼마 전. 지인에게 상처받았다는 식의 말을 들었고 A는 억지로 지인과 새벽에 통화까지 해야 했다.



그날 A양은 또 쓸모없는 소리로 시간을 날렸고 해야 할 일은 반도 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점점 새벽 기상조차 괴로워진다고까지 말했다.




The Banks of the Marne at Dawn (about 1888)_Albert Dubois-Pillet (French, 1846–1890)




이렇듯 우리는 살면서 타인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는 순간이 온다. 심지어 A양의 지인처럼 서운하다는 말로 감정적인 상처를 들먹이는 사람도 있다.




상대방의 터무니없는 요구는 도대체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는 걸까?




나도 감정적 상처를 들먹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처음엔 상대에게 미안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적 상처를 들먹이며 싫다는 걸 억지로 하게 만드는 사람이 과연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맞는가, 내가 신경 써야 할 사람 맞는가는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A양은 지인에게 몇 번이고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는 A양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소통이라는 게 이렇게 일방적이어도 되는 걸까? 그걸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낭비되듯 흘러간 새벽과 집중력은 누가 보상한다는 말인가?




St Vincent at dawn_Albert Goodwin (English, 1845–1932)




내 시간을 손해 보면 정말 손해 보는 건 나뿐이다




우리에겐 소중한 시간을 지킬 권리가 있다. 굳이 A양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상대가 감정적인 상처를 들먹이며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때 당연하게 거절할 권리가 있다.




제물이 되는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말자고 생각한다. 감정적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이용해 상대는 당신을 조종할 수 있다. 당신이 독립적으로 행동하려고 할 때나 혹은 통제를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이를 교묘히 이용한다. '감정적 상처'의 95퍼센트는 진짜 상처가 아니라 피해자 전략에 쓰이는 재료다.

-웨인 다이어,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지금 당신 곁에 싫다는 데 굳이 감정적인 이유를 들어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는 감정적 상처를 들먹여 당신을 조종하고 싶어 하는 걸 수도 있다. 자기 입맛대로 통제하려는 것이다.




Bluebonnets at Dawn, North of San Antonio (1915)_Julian Onderdonk (American, 1882 – 1922)




우리는 나로서 잘 살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에겐 내가 자신을 서운하게 만든 사람이고, 별 것도 아닌 걸로 예민하게 구는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상대가 서운해할 나쁜 선택을 하는 것이 옳다. 나에게 나쁜 선택을 하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전 01화 착하게 살면 정말 행복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