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는 참 이상한 시기다. 아무 이유 없이 울컥 눈물이 나고, 어제는 괜찮던 말이 오늘은 가슴에 콕 박힌다. 사춘기 때 느꼈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다시 타는 것 같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아서 금세 지친다.
아들이 중 2 때였다. 아침부터 우린 티격태격했다. 내가 “학교 준비하라”라고 재촉하자, 아들은 “좀 알아서 할게요!”라며 짜증을 냈다. 순간 나도 화가 치밀었다. “그럴 거면 학교 그만둬! 소리 지르고 나니 속이 후련한 게 아니라 더 쓰렸다. 아들은 무표정하게 방문을 닫아버렸고,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억울했다.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이렇게 기운 빠진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제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서러웠다.
그런데 저녁 무렵, 아들이 나를 부르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엄마, 오늘 제가 좀 심했죠? 미안해요.” 그 말 뒤에 아들이 덧붙였다. “엄마 요즘 자주 힘들어 보이던데… 저도 알거든요. 그래서 더 잘해야 되는데 제가 자꾸 엄마 속상하게 해서 죄송해요.”
그 순간, 마음속 뭔가가 와르르 무너졌다. 예상치 못한 아들의 사과에 감정이 폭발해, “엄마가 오히려 미안해”라는 말만 겨우 내뱉고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들이 당황해서 내 어깨를 토닥였다. 작은 손길이지만 얼마나 따뜻하고 다정했던지.
그날 이후로 아들은 사소한 것에 짜증을 내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엄마 괜찮아요?” 하고 묻곤 했다. 사춘기의 변덕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갱년기의 엄마를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 참 기특하고 안쓰러웠다.
사춘기와 갱년기는 둘 다 쉽게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다. 감정이 널뛰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 두 시기가 만나는 집안에서, 우리 모자는 조금씩 상대방을 배워갔다. 엄마도 완벽하지 않았고, 아들도 그랬다. 서로 다투고 삐지고, 그러다 울고 웃으며 살아왔다.
갱년기의 나는 아들에게 종종 짐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아들은 나를 이해하기 위해 한 발 더 다가오고, 나는 그런 아들을 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가 함께 맞춰 나가는 시간은 힘들지만, 그 안에서 자라는 사랑은 더 단단해졌다.
그날 아들이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엄마 힘든 거 알아요. 그래서 제가 더 잘할게요.” 그 말은 나를 울게 했고, 동시에 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사춘기를 이기는 갱년기는 아들의 다정한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