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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여름 Oct 06. 2024

여름 한가운데 대만의 중심, 타이베이에 왔다고(4)

로딩 중이 여행에 몰입하게 해 준다면 기다릴 수 있을까

유심·이심을 이용한 해외 SIM이나 포켓 와이파이(예: 와이파이 도시락, 로밍 에그)를 한국이나 공항에서 미리 챙기지 않으면 타이베이에서 여러분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소개합니다.


KT 통신사 가입고객은 별도의 신청 없이도 기존 요금제에 따라 로밍을 통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가능하긴 했습니다.(H와 제가 나라마다 천차만별인 통신 속도의 느릿함을 견딜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라면 충분했다는 말입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더라도 어디에든 방법은 다 있으니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불안해할 이유는 없다는 사실이 통신사 로밍 관련 경험으로 배운 점입니다.


3박 4일 동안 공항과 숙소와 멀어지는 순간 강제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면서 오히려 바깥 풍경과 주변 사람들을 촘촘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한국에 있는 지인과의 대화시간은 늘 이른 아침과 긴 밤으로 보내서 며칠을 미안함과 궁금함이 따라다녔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해도 조회를 하려면 30초, 다운로드를 받으려면 1분 이상 기다려야 해서 마음에 드는 이미지는 (이때다 싶은) 스크린 캡쳐본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일요일 오전 7시 동네 마트 규모와 대형 마트 정도인 까르푸 2곳을 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탑승합니다.

이지카드*에 금액이 충전이 되어있지 않았던 H는 동전으로 내었다가 환불을 못 받아 편도행으로 왕복 2인용 요금을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EasyCard는 대만 전역에서 통용되는 대중교통, 편의점, 야시장, 식당, 백화점, 명소 등에서 현금 충전을 통한 선불식 카드인데요, 

해외 SIM처럼 역시 공항에서 미리 안 사고 편의점을 두리번거리다가 지하철역에서 구입하면서 어떻게든 일정에 따라 상황은 흘러간다는 걸 느낍니다.


주말 아침 장 보는 이들처럼 과일, 티백, 생필품을 (커스터드푸딩도 살까 말까 고민하면서) 카트에 담으며 역시 사람 사는 은 멀리서 얼핏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을 미루어두고 얼마 남지 않은 귀국 시간이 아쉬워서 내린 선택이 주는 소소함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놀러 가면 그 나라에서 주로 재배되는 과일을 실컷 먹어봐야 한다고 합니다.

쑹산공항에 출발하기 1시간 전에 H와 사 온 망고와 용과의 과육은 달콤한 걸 넘어서 흰 티셔츠에 과즙을 흘린다면 그대로 진노랑색과 진보라색이 물들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이 취향이 아니라면서 주신 망고맥주는 망고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고 저희의 취향에는 꼭 맞았답니다.


가족, 친구, 회사 부서에 전할 선물을 캐리어에 한가득 담으면서, 함께 한 친구들과 한 번은 꼭 흰 옷으로 맞춰 입어보자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한창 관광 다닐 때는 자아를 한껏 머금은 옷을 입다가 왜 가는 날 급하게 드레스코드를 맞추는 거냐고 물어보신다면 저희 마음이라는 답변을 드립니다.)


착륙하면서 비행기 모드가 해제되면 마중 나온 안부 연락이 저를 반길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다음 휴가는 언제, 누구와 어디가 될지 막연한 상상을 해봅니다.


플래너가 아니면 일상기록 한 줄을 안 적었고 여행을 좋아할 줄 몰랐던 제가 여행기를 쓰는 날을 만드는 걸 보면 인생은 이렇다 하고 단정 짓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할 일이 넘치고 복잡해서 한 치 앞도 모르겠다면 괜찮으니까 그런 감정도 한 번 느껴보면서 우리는 그저 한 번에 하나씩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싫어한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 어쩌면 좋아하는 법을 몰라서 피했다는 걸 알게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러나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들을 잘 봐 두라고. 같은 공간에서도 같은 사람을 만난대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쓴 글이니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낸' 거니 그럴 거다.
- 김애란 작가님 산문, 잊기 좋은 이름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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