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하니 내가 학교를 다녀, 직장을 다녀, 친구들과의 만남도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주로 집에만 있었다.
30살의 육아휴직이 시작된 첫날, 임신한 무거운 몸이 날아갈 것 같았지만 좋은 건 일주일도 채 안 갔다. 심심하고 외롭고 따분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나, 그때와 많이 바뀌었나 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사색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체력이 좋은 날은 대청소도 했다. 어쩌다 잡은 약속도 가족이 독감이 걸려 취소되고 그러다 보니 난 거의 두 달 동안 사람들과 깊게 교류하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모든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싶었기에 사람들과 만나서 기가 쭉쭉 빨리는 것도 좋을 것이 없었다.
지난주, 엄마가 몇 포기 되진 않지만 김장을 도와주시러 오랜만에 오셨다. 아이를 봐주셨던 엄마가 강릉으로 돌아가고 엄마가 쓰던 빈방에 남아있던 엄마용 드라마 티브이. 티브이 두 대면 통신료도 좀 더 나오기에 그것을 처분했다. 자신의 방이었던 공간에 티브이가 없는 것을 보고 거실에서 8시부터 10시까지 연이어 드라마를 봐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8시부터 티브이를 틀고 홈트를 하려고 했는데... 도와주시러 올라오신 엄마에게 티브이를 돌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파트 헬스장으로 향했다.
러닝머신에 올라가 티브이를 틀었다. 채널을 몇 번 돌리니 나 혼자 산다 천정명편이 나오고 있었다. 난 분명히 천정명편을 본방으로 본 적이 있었다. 다른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았겠다 본 적 있는 천정명편을 틀어놓고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오늘의 게스트 천정명 씨입니다"
'0_0 뭐야... 인간이 왜 저렇게 잘생긴 거임...'
러닝머신에서 빠르게 걷고 있는. 언젠가는 보통의 몸이 되고 싶은 인간이 천정명을 보고 놀라버렸다.
천정명의 등장에 놀란 박나래엠씨의 표정. 나의 표정과 정말 똑같았다.
'아 분명히 본방 볼 때는 이런 느낌 없었는데 뭐야... 잘생김이 도를 지나쳤네.'
그렇게 게스트인사를 마치고 천정명편 시작. 암막커튼에 아침에도 깜깜한 천정명의 침실. 이불속 천정명이 들어가 누워있으나 이불이 얼굴 위까지 덮여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와 잘생겼다."
얼굴도 안 나왔는데 박나래엠씨가 빠른 감탄을 하여 주변 엠씨들의 질책을 받았다.
'박나래 씨 마음... 제가 잘 압니다 흐흐'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 천정명이 이불밖으로 나온다.
'미틴. 10년 전이랑 얼굴이 그대로야!!'
내가 러닝머신을 타고 있는지 천정명의 동그랗고 맑은 눈동자에 빠져들어가고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빠른 걸음으로 30분 걷고 끝내려고 했는데 천정명편이 끝날 때까지 계속 걸었다.
사실 옆에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나는 천정명을 보고 계속해서 빙구웃음을 지으며 러닝머신을 탔다. 그렇게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그러고 보니 내가 사람을 저렇게 뚫어져라 본 게 얼마만이더라...'
은행 수신창구에 있을 때. 하루에 50명 정도의 손님얼굴을 보았다. 5일만 일해도 250명. 한 달이면... 1000명의 얼굴. 다양한 얼굴들을 일부러 못 본 척하며 일할 때도 있었고, 기억하고 싶어도 습관이 되었는지 금방 얼굴을 잊어버렸다. 가끔씩 소리를 지르며 화내는 손님들이 있어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화낸 손님의 얼굴을 기억하고 오래도록 곱씹으면 나만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천정명의 본방도 분명 영혼 없을 시절 보았을 것이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본 방송. 사람을 만나지 않는 지금 와서 보니 천정명의 얼굴이 100배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