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스토너)
소설 구성의 3 요소가 인물, 배경, 사건이라고 배운 적이 있다.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를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는 소설 구성의 요소로 ‘인물, 인물, 인물’이라는 장르를 만들었구나! 그만큼 나는 주인공 스토너의 주변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숨죽이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의 유년기를 설명하기 위해 불러들인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가 되는 이디스가 등장하는 대목부터 어쩌면 새드 엔딩의 조짐을 보았는지 모른다.
참, 이 소설은 평생 영문학과 교수로 지낸 윌리엄 스토너가 자신이 쓴 저서 한 권을 남기고 생을 마감하는 내용이다. 후반부에 스토너의 딸 그레이스가 파멸하는 과정은 안타까웠다. 그 근본 이유로는 스토너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썩 훌륭하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약 400페이지를 덮을 때가 되자 뭔가 씁쓸하면서도 먹먹했다.
교육자라는 측면에서는 나는 그를 영웅으로 봤다. 스토너가 청년기에 자신의 숙명이 되는 분야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엄청 부러웠다. 특히 지도교수 아처 슬론의 영향으로 영문학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슬론 교수가 죽었을 때 나는 스토너 학생으로 빙의해 눈물까지 머금었다.
그 외 동료 교수로 핀치와 로맥스, 제자로는 워커, 캐서린 등이 등장한다. 앞서 말했듯이 새로운 인물이 서술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들이 주인공에게 또 어떤 날벼락같은 일을 쏟아부을지 긴장됐다. 동시에 작가의 인물 묘사력에 감탄하면서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바빠졌다. 환희와 상실, 영광과 좌절, 감탄과 절망 등 생의 삼라만상이 이 소설에 빼곡히 녹여져 있다. 삶의 어떤 단계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이 소설에 흠뻑 취할 것이라 단언한다. 작가가 독자들을 몰아쳐 가는 힘은 정말 대단하니까.
스토너의 인생은 자신을 영문학의 길로 인도해 준 슬론 교수의 사망 이후 색다른 국면으로 넘어갔다. 바로 로맥스 교수의 존재 때문이다. 애당초 그와 조금 더 거리를 가깝게 유지했더라면 삶은 어떻게 풀렸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우리는 라이벌이자 동료와 친구가 될 수 있기나 한 걸까. 처음 만난 사람을 보자마자 적군인지 아군이지 판별하긴 어렵다. 다만 스토너는 열정과 솔직함이 부족했을 뿐 로맥스에 대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자기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로맥스를 초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이 둘은 일평생 갈등을 겪는다. 정말 인생은 알 수가 없다.
나도 인생이라는 바다에 빠져 수많은 실패와 실수 그리고 실소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자연스럽게 내 주변 인물을 살펴보게 됐다. 나의 인간관계는 평온한가. A는 나에게 로맥스인가 핀치인가, B는 나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나 소금을 뿌렸나. 조용히 셈하다 보면 ‘그때 이렇게 했었어야 했는데……’하는 아쉬움이 몰려든다. 물론 나에게도 스토너가 가졌던 어색함과 서투름이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임종을 앞둔 스토너가 자신에게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언젠가 나도 삶을 관조할 때가 오겠지. 스토너와 로맥스의 우정을 희망하는 것을 보면 나는 삶에서 진실한 우정을 중시하는 사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