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대도시의 사랑법)
버스를 타고 있을 때였다. 그날따라 이어폰도 끼지 않고 폰도 가방 안에 넣어둔 채였다. 눈동자는 멍 때리듯 거리의 간판들을 스치고 있는데, 기사가 틀어 둔 라디오에서 익숙한 로고송이 흘러나왔다. ㅇㅅㅎ, ㅇㅅㅎ 간호학원~ 그리고 훅 들어왔다.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며 ‘규호’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심지어 눈물까지 차오른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게 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허겁지겁 도착지 정류장에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연작소설인 <대도시의 사랑법>에는 4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중 민규호는 표제작인 <대도시의 사랑법>에 등장한다. 장르는 제목답게 로맨스 소설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한 줄기 희망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나’가 서울에서 규호를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서울은 아니지만, 인천에 살고 있는 규호.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은 이유가 따로 있었던 규호. 결국 서울에 살게 되는 규호.
작품 내내 작가는 거지 같은 가정사와 불안정한 미래라는 절망을 뚫고 주인공들이 찾아낸 환한 빛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그 빛을 작가는 서울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규호가 나의 서울인 것만 같다는 문장까지 있을 정도니까. 나도 모르게 나의 서울은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해 봤다. 이 책을 읽으며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비참한 현실에서 얼마든지 서로의 구원이 되어주었던 존재 말이다. 심지어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소설은 위안이 되어줄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는 작가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작가는 긍정과 부정이 섞인 알 수 없는 문장을 쉴 새 없이 써 내려가는데 그래도 나는 너무나 잘 이해가 갔다. 시대를 통찰하는 작가의 시각 때문일 것이다. 개그맨 뺨칠 듯한 우스꽝스러운 표현도 곧잘 쏟아진다. 어디 사람 많은 곳에서 읽기라도 할라치면 피식피식 터지는 웃음에 눈치를 봐야 할지도. 원래 이런 병맛코드(?)에 잘 넘어가는 독자가 아닌데…… 하여튼 작가의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 한 단어에 현실 도시인이라면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위로받을 것이다.
제목은 왜 ‘도시의 사랑법’이 아니라 ‘대도시의 사랑법’일까. 주인공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은 그가 사랑했던 것들. 주인공 ‘나’는 대도시의 무자비함을 경험하다 못해 평생 동반해야 하는 병까지 얻는다. 소설을 재독하게 될 때면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가슴이 아려온다. 내용을 알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주인공들의 불행이 너무 가여워서다. 특히 서울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데이트 장소에서 고백이 이루어질 때는 두 사람의 운명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섬에서 태어난 규호. 형의 의대가 있는 인천에 살다 상해로 옮기게 된 규호. 인천 사람은 다 아는 ‘ㅇㅅㅎ 간호학원’을 다녔던 규호. 실제로 인천에 살고 있는 흔한 나 같은 독자 한 명에게 느닷없이 먹먹함을 안겨줄 수 있는 소설 속 인물 규호. 안아 주고 싶다. 너를 엄청나게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을 어서 만나라고 호통치고 싶다. 너의 사랑을 응원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