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넘어 정체성과 허구적 이미지, 그리고 현대 문화의 얼굴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인데요.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그녀는 정체성, 자기 연출, 여성의 재현을 탐구하며 시대와 함께 변해왔습니다. 셔먼의 작품은 단순한 미술사적 가치를 넘어, 대중문화, 패션, 영화, 디지털 미디어까지 영향을 미치며 전방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데요. 셔먼의 작품은 어떤 특별함을 가지고 있길래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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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먼의 작업은 1970년대 후반 <Untitled Film Stills>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흑백 영화 속 여성 캐릭터를 재현한 이 시리즈는 여성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당대의 페미니즘 미술 담론과도 엮여있습니다.
이후 그녀는 Centerfolds (1981), History Portraits (1989–90), Clowns (2003–04) 등 다양한 시리즈를 발표하며 시각 문화의 규범을 해체하는 작업을 이어갑니다.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다양한 인물로 변신하는 방식은 현대 미술의 중요한 방법론이 되었고, 그녀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컨템포러리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잡는데요. 사회 비판적인 셔먼의 작업은 여성 예술가가 주류 미술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녀의 사진은 미술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며,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있습니다.
셔먼은 자기 자신(the self)를 모델로 사용하여 다양한 캐릭터에 분하며 초상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이는 소셜미디어서 셀카 / 셀피(Selfie)문화와 닿아있어 더 흥미로운데요. 그녀의 변신과 연출 방식은 단순한 나르시즘이나 코스튬 놀이가 아니라, 대중문화로 형성되는 현대 인간의 정체성과 사회적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셔먼은 초반 작품부터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로 변신하며, 사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전략을 취해왔는데요. 영화와 대중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인물로 분장하고, 이를 통해 정체성과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합니다. 최근에는 셔먼은 디지털카메라와 그린 스크린 기술을 활용하여 배경을 수정하고, 회화적 자유를 사진 작업에 적용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그녀는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작품 속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과 사회적 맥락을 탐색하도록 유도합니다.
셔먼의 작품은 자아와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역할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그녀의 변신 과정은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내는데요. 그녀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시각 이미지들 (대중매체, 패션, 소셜 미디어 등) 을 통해 새로운 시리즈의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상적인 경험은 예술적 창의성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다양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중고 의류 매장을 돌면서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영감을 받음을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셔먼은 자신의 작품에서 영화적 요소와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죠. 특히 셔먼은 자신의 다큐멘터리서 어린 시절 <Cindy Book>이라는 것을 만들었음을 기억해내었고, 이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영화와 텔레비전을 매우 즐겼음을 말하며 이는 그녀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라고합니다.
셔먼은 1950~60년대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은 미국 예술가 중 하나이며, 향유자로서의 비판적 시선이 영화 속 여성 캐릭터와 할리우드의 정형화된 이미지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지향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시리즈인 Untitled Film Stills(1977–1980)에서도 그녀는 흑백 영화 속 여성 주인공처럼 연출된 자화상을 촬영하면서, 관객이 이미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시각적 코드와 내러티브를 비틀곤 하였죠.
이처럼 그녀의 예술적 감각은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영상 경험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영화 속 여성의 정형성을 비판하는 작업의 원동력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단순한 오마주(homage)가 아니라, 영화적 이미지가 우리의 정체성과 시각 문화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탐구하는 미학적 실험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보면, 셔먼의 초상 사진들은 단순한 자기표현이 아니라, 대중문화가 여성의 이미지와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분석하는 사회적·미학적 연구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녀가 어린 시절 경험을 강조한 것도, 결국 그녀의 작업이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서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성이란, 유행으로부터 역사적인 것 안에서 유행이 포함할 수 있는 시적인 것을 꺼내는 일, 일시적인 것으로 부터 영원한 것을 끌어내는 것이다"
-보들레르 <현대생활의 화가> p. 33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그의 저서 <현대생활의 화가, 1863>에서 ‘현대성(Modernité)’이라는 개념을 통해, 변화하는 순간성과 시대적 감각을 포착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임을 강조했습니다. 19세기 파리를 살아간 보들레르에게 패션과 도시적 풍경, 그리고 현대인의 모습은 중요한 예술적 소재로 다가왔고요. 그는 패션은 단순한 외적 꾸밈이 아니라, 시대 정신을 담고 있는 매개체로써 평가합니다.
보들레르는 ‘근대의 화가’란 현대적인 감각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그 안에서 영원성을 발견하는 자라고 규정하는데요. 그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도시 속 인간의 모습을 예술로 형상화하는 것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셔먼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보들레르가 말한 ‘현대성’에 대한 탐구와 맞닿아 있음이 흥미롭습니다. 셔먼은 1970년대 후반부터 여성이 사회에서 소비되는 방식을 탐구하며, 영화, 광고, 패션 등 당대의 시각 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요,보들레르가 파리 거리에서 근대적 군중 속 현대인을 관찰했던 것처럼, 셔먼은 현대 대중매체에서 유통되는 이미지를 관찰하면서 그 안에 내재된 규범성(특히 여성 이미지의 연출 방식)을 변형합니다.
오늘날 내가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현재의 풍속을 그린 그림들이다. 과거는 예술가들이 그들에게 현재였던 그 과거에서 추출해 낼 줄 알았던 아름다움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또한 과거로서의 그 역사적 가치때문에 흥미로운 법이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현재의 재현에서 추출하는 즐거움은 현재를 감싸고 있는 그 아름다움에서뿐만 아니라 현재의 본질적인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
-보들레르 <현대생활의 화가> p. 9
셔먼은 현대 사회의 이미지를 탐색하는 시각적 탐험가이며, 패션과 시각적 기호를 통해 현대성을 해석하고 있는데요. 보들레르도 패션을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로 보았습니다. 일상적으로 이해하듯이 패션은 현대적인 감각과 개성을 담는 동시에, 사회적 신분과 욕망을 드러내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셔먼의 작업에서 패션은 단순한 ‘옷’이 아닙니다. 패션은 정체성과 사회적 규범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동시에 이를 해체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History Portraits (1989-1990) 시리즈에서는 고전 명화 속 인물처럼 분장하지만, 의상이 너무 헐겁거나 지나치게 과장되어 불안한 느낌을 주는데요. 패션을 통해 전통적인 정체성을 흉내 내면서도 이를 해체하는 그녀의 전략이 잘 드러납니다.
Clowns (2003-2004) 시리즈에서는 광대 복장을 통해 패션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가리는 가면과 같음을 암시하여 현대 인간의 ‘가짜 정체성’과 ‘과장된 감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보들레르가 패션을 "한 시대의 영혼을 반영하는 요소"로 보았던 개념과 연결되는 지점이지요.
보들레르가 근대 대도시 파리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포착하려 했듯이, 셔먼 역시 팽창하는 미국 대중문화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시각적인 요소로 말미암아,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소비되는지를 고민했던게 아닐까요?
더불어, 보들레르는 19세기 파리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창녀(매춘 여성)의 이미지를 중요한 예술적 모티프로 삼는데요. 그의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과 산문집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에서는 창녀가 단순한 성적 대상이 아니라, 근대 도시 속에서 소비되고 버려지는 인간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근대 도시의 상징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 가치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악의 꽃에서 창녀는 향락과 타락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고독하고 유한한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는데요. 파리의 우울에서 연민, 혐오, 매혹, 불안이 공존하는 시선으로 보들레르는 창녀를 바라보는 남성 화자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었습니다.
한편, 셔먼은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어떻게 시각적으로 소비되는지를 탐구하는데요. 그녀의 사진 속 인물들은 영화 속 여주인공, 상류층 여성, 중산층 가정주부, 광대, 기괴한 캐릭터 등으로 변신하지만, 그 모든 이미지의 기저에는 여성의 대상화, 시각적 소비,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질문이 깔려있습니다.
셔먼은 변신의 아이콘이자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자아와 정체성을 탐구하는 예술가로 여전히 작품을 이어나가고 있는데요. 디지털 매체와 네트워크 시대에도 빠르게 적응하여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이미지 변형 형태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디지털 시대에는 인스타그램 필터와 보정을 활용하는 등 현대성을 지속적으로 갱신하며 흥미로운 작품을 보여줍니다.
뉴욕타임즈 기사 바로가기:
몇년 전 한국에서도 셔먼의 전시가 열렸었습니다. 2023년 여름,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열린 온 스테이지 파트 2(ON STAGE – PART II) 전시는 셔먼의 과거와 현재를 담았는데요. 초기 작업부터 최근작까지, 특히 인스타그램 필터를 활용한 셀피 시리즈와 태피스트리 형식의 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사진이 한 인물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필터로 얼굴을 변형시키면서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니다. 그런데 과연 '진짜 나'라는 디지털 시대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남깁니다.
셔먼은 아날로그 카메라 시대 부터 디지털 과도기, 그리고 스마트폰 카메라와 필터, 이미지 편집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까지 끊임없이 기술과 매체에 적응하면서, 그녀의 자기 연출과, 정체성, 사회적 이슈, 대중 매체를 포괄하는 세계관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녀가 인공지능 전환기를 맞은 근미래에는 어떤 예술을 펼쳐나갈지 매우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