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나무늘보 Oct 20. 2024

오늘부터 우리는 (완)

  이번엔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연유 커피와 아이스 초코를 주문한 지연은, 테이블에 앉아서 서빙을 기다리며 카페 입구에 있는 자그마한 제단을 보았다. 지붕 밑에 기둥 두 개가 받쳐진, 작은 대문 모양의 제단 앞에는 꽃과 과일들이 놓여 있었는데 지연은 그 사이에서 초코파이 박스를 발견했다.


  어제 가게에서 한국 과자를 보았을 땐 그저 재미있었는데, 제단에서 다시 마주하니 느낌이 좀 달랐다. 생업으로 한국 과자를 파는 베트남 가게 주인, 일상의 기도를 위해 제단에 올려진 초코파이…. 이곳은, 조용한 옛날 동네 같은 낭만의 장소가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의 엄연한 삶의 터전이었다. 남편과의 생활을 정리하고 아들과 둘이 떠나온 곳, 억센 야자수 잎을 거치고 나와서 찾은 동네. 관광지로 진입하기 전 잠깐 거쳐 가려고 했던 이곳에서 의외의 편안함을 느꼈고, 그래서 며칠 더 머무르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지연은 예정대로 움직이는 것이 제일 아름답겠다고 생각했다.


  “준우야, 이거 마시고 호텔 가서 짐 정리해서 나오는 거야. 이제 우리 비행기 한 번 더 타야 돼.”

  “또 타요? 어제처럼 오래 타요?”

  “아니야, 어제처럼 오래 타지는 않아. 준우 비행기에서 낮잠만 한 번 자고 일어나면 돼.”

  “기린은 아직 못 찾은 거지요?”

  “아직 연락이 없네. 준우 여기 계속 있고 싶어?”


  아이는 고민했다. 기린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오늘 다른 곳으로 가서 물놀이할 거라는 엄마의 말이 기억났던 모양이었다. 자기 나름의 의견과 감정이 있고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보통 아이의 모습이 불쑥 나타날 때마다, 지연은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곤 했다. 울컥하는 감정을 아이에게 들킬까 봐, 침을 꿀꺽 삼킨 후 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 엄마는 이 동네 좋았는데. 아들은 어땠어?”

  “좋았어요. 엄마랑 손잡고 다녀서 좋았어요.”

  “그래? 그럼 우리 다음에 여기 또 올까?”


  준우는 어느새 대화에 흥미를 잃고 아이스 초코에 빠져 있었다. 지연은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짐 싸서 체크아웃하는 시간과 공항까지 가는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국내선 공항은 국제선과 다른 곳에 있어서 길을 잘 모르기도 했기에, 오늘은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무료 픽업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올 때처럼 야자수 잎사귀를 만질 수 없어서 준우가 서운해할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기사에게는 팁으로 십만 동(銅)쯤 주면 되려나. 여기 돈은 단위가 커서 사람을 흠칫 놀라게 한다. 비행기 대기 시간 동안 준우에게 먹일 점심 메뉴도 골라야 한다는 것이 뒤이어 떠올랐다. 지연은 이제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제 몫의 음료를 다 마신 아이가 엄마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근처에서 주운 돌멩이 하나를 보여주었다. 지연은 돌을 한 번 꼭 쥐어서 온기를 더한 후, 아이의 주머니에 깊숙이 넣어주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11화 오늘부터 우리는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