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라레솔도 10화

부디, 백일장

by 에밀리



아침부터 땀을 한 바가지 흘린 듯하다. 이른 새벽 일어나 강아지 산책시키고 주방정리와 거실 정돈하고 빨래를 개고 밥을 안치고 예술의전당 앞에 아이 연습실 데려주고 서둘러 달렸다.


집에 들러서 아들을 깨우고 9호선을 타고 가다가 3호선 환승,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다시 환승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지하철 역사를 나오면서 계단으로 찬 바람이 쌩쌩 불어왔다.


조금이라도 일찍 글제를 보고서 쓰고픈 마음에 서둘러 계단을 오르고 올리브영을 지나 밀리오레 골목으로 달음박질쳤다. 드디어 중구청 구민회관이 보여 마음이 차분해졌다.


날이 흐려서 바람은 차가웠으나 구슬땀이 이마와 목덜미에 송글송글 흘러내렸다. 이미 10시가 지나서 글제가 나와 있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원고지를 받아 들었다.



글제

노을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일출



다행히 위 다섯 개의 글제는 시와 수필로 써오던 글감이라 안도했다. 무엇으로 쓸 것인가? 어떻게 구상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안정적인 자리를 찾아 앉았다. 12시까지 제출이라 90분 정도 남았다. 수필을 쓰면, 연습장에 창작하고 원고지에 옮길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어릴 때 연필을 정석대로 잡지 않는 버릇이 잡혀버렸다. 그로 인해 연필을 받치는 중지 손가락 손톱 아래 왼쪽에 동그랗게 사마귀처럼 부풀어 있었다. 학창 시절 내내 공부는 써가면서 손으로 하는 것이라, 오른쪽 중지는 온전하지 못했다.


그런 연유로 이십 대부터 노트북을 공책처럼 소지하며 사용하고 있다. 손글씨보다 노트북에 필기하고 받아쓰는 것이 빠르고 익숙하다. 김소월 백일장에서는 전자기기가 일체 허용이 안 되었다. 원고지에 연필로 쓰고 퇴고를 거듭하다가 펜으로 꾹꾹 눌러 썼다.


수필감으로 글제가 무척 욕심이 났으나 손글씨가 버거워 시를 선택하였다. 애끓는 사부곡을 써야지....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열차게 써왔던 시편 중에서 두 편을 생각나는 대로 연습장에 써보고 퇴고를 거듭했다. 30분 남겨놓고 천천히 연필로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적었다. 펜으로 연필 글씨체 위에 덧대어 쓰고는 연필자국을 지우개로 지웠다.


백자 원고지 1페이지를 넘어가 2페이지 위 두 줄 쓰고 마쳤다. 모처럼 접하는 원고지 글쓰기가 낯설다. 한 줄을 띄고 두 번째 줄 가운데에 제목을 쓰고서 또 한 줄을 띄고 그다음 줄 첫 칸을 비우고 쓰기 시작하였다. 원고지에 써 내려가니 옛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당신은 숙명, 끊을 수 없는 탯줄'이라고 맺었다.


발표가 날 때까지 두근두근,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매 순간 기대할 것이다. 백일장으로 인정받아온 글쓰기라, 더욱이 등단하고서 몇 년 만에 백일장이라 떨리고 설렌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위풍당당 큰소리쳤는데 부디, 이루어져라! 샤라라라라라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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