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지식
성경에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생명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중심으로 하나의 기준을 만드셨는데, 유목민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다. 이것은 인간을 괴롭히거나 헷갈리게 하려는, 단순히 종교적 압박을 목적으로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정주민족인 우리의 입장에서 이해하기가 좀 어렵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동산의 개념과 유목민들이 생각하는 동산의 개념은 차원이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산은 울타리로 쳐져 있고 잔디가 몇 평방미터 깔려 있고, 과일나무 몇 그루, 꽃들이 집 주변과 울타리 주변에 피어있으며 조그만 연못이 있는 그런 동산, 아니면 이보다 좀 더 큰 규모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에덴동산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그림들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유목민들의 상상 속에 있는 동산은 작은 야산처럼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타고 수 시간을 달려도 끝나지 않는 푸른 초원 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초원(동산)에는, 비슷하게 생긴 과일나무들로(멀리서 보면…) 즐비한데, 그중에 아주 독특하게 생긴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아주 멀리서도 단번에 구별할 수 있는 그런 나무들이다. 그 두 그루의 나무가 광활한 초원 같은 에덴동산의 기준이 된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집을 나와 말을 타고 몇 시간 산책을 하였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도 그 두 그루의 나무를 보면서 말을 달렸을 것이다.(가정을 하자면…) 만약 그 두 그루의 나무가 없었다면, 아마도 몇 날 며칠 말을 타고 헤매다가 집을 찾지도 못하고 지쳐서 아무 데서나 노숙을 했을 것이다. 이 상상은 진지하게 신학적으로 해석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관점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가볍게 상상을 해본 것이다.
간혹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왜 신은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을 시험하셨나요? 생명나무만 있어도 되었을 텐데…, 왜 신이 인간을 통제하려고 그러는가요? 어떻게 신이 그럴 수 있어요? “
그러면 이렇게 이해시키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로봇처럼 무조건 복종하도록 만들지 않고 자유의지를 주셨어요. 그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어요 “ 이 답변과 함께 자연스럽게 논쟁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의문을 유목문화적인 관점에서 설명을 하면 어떨까?
유목민에게 있어서, 드넓게 펼쳐진 초원 가운데 기준이 되는 나무가 있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신의 배려인 것이다. 초원 중간의 나무는 인생의 기준될 뿐만 아니라, 휴식처요, 안식처요, 새롭게 힘을 공급받는 힘의 원천인 것이다. 만약 지평선이 보이는 초원 위에 기준이 될 나무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재앙과도 같다. 유목민들의 삶은 카오스 상태되고 쉴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가 쓰러져 결국 죽게 된다.
지금도 가끔 뉴스를 통하여 경험이 없는 목동이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모든 양 떼를 잃고 목동 자신도 탈진되어 죽은 것을 접한다. 어쩌면 에덴동산의 나무를 이해하기 위해 저 중앙아시아 초원이나 북아프리카 사막(베르베르족,, 베두인족)에게 가서 나무 두 그루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