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일본땅 2화
일본이 우리에게
정식으로 사과한 적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일본 총리가
우리 대통령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를 한적은 없지만
그나마 이런식의
사과를 한 적은 있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중 일부.
(전략)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중략)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한,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이런 사실이 있었던것을
알고 있었나?
그리고 그로부터 10년후인
2005년
코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해
코이즈미 담화를 발표 한다.
(전략)
일본국은 일찍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함과 더불어 지난
대전에서의 내외의 모든 희생자께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중략)
특히,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사이인 중국이나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제국과는 함께 손을 잡고 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며
발전을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상호 이해와
신뢰를 기반으로 미래지향의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어떠한가?
이런 사실을 모르시는 분들도
꽤 계실것이다.
그리고 놀랍지 않은가?
꽤나 적극적인 사과를 일본이 했었다는
사실이.
그런데 우리는 왜
일본 보고 역사를 잊었다느니
사과 안한다고 주장 하는 것일까?
그것은 얼마전에
너무 행복하고 고통 없이
사망한 아베 때문이다.
아베가 총리가 된 이후,
사과는 고사하고 적극적으로
우경화 되어
독도가 일본땅이라느니
여러 ㅈㄹ이 강화 되었고,
총리가 저 모양이니
일본내 우익 단체들의
혐한 시위와
혐한 서적 붐 등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에 와서는
과거의 저런 사과 마저
기억에서 잊혀진 것.
2005년에 일본의
서쪽 지역.즉 독도 근처
지역인
시네마”현”
(우리의 경기도,강원도 할때
“도”와 비슷한 행정 구역)
에서 타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하게 되고
그것을 정부도 적극
지원하면서 교과서에 독도를 지들
영토라고 표시 하고
국제적 홍보를 하기도 하는 등
고약한 짓들을 강화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일본 국민들은
별 관심이 없었고
그 당시에는 한류가
슬슬 본격화 하고 있을 시점이였다.
드디어 이전화의
본론으로 돌아와
신주쿠의 어느 카페.
나와 마주 앉아 있는
93년생 철수.
철수의 나이에 맞춰 보면
타케시마의 날이 제정된 2005년에
철수는 12살이였다.
내가 알기로는
대부분의 일본인은
독도 문제를”뉴스에나 나오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지 별
의식 자체가 없다는 느낌이였는데
그건 2005년까지의 일이였던지
자기 자신은 물론
자기 주위의 사람들 모두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내 면전에서
발언한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거기서
얼굴을 붉힐수는 없었다.
상황 자체가 내가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였고 독도 이야기를 하는
자리도 아니였고
또,너무 해맑은 표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당황 되었지만
겨우 표정관리를 하고
인터뷰를 이어 갔다.
사실 독도 이야기가
왜 나왔냐면
한국에서 일본인으로서
곤란한 적은 없었느냐는
질문의 대답 때문이었다.
자주 가던 쭈꾸미집이
있었는데
그 가게 이름이
“독도 쭈꾸미”
였다는 것이다.
그 가게가 너무 맛있어서
일본인 직장 동료를
데리가 가게 되었는데
그 동료가
상호가 이런데
우리가 일본인인거
들키면 큰일 나는거 아니냐,
고 해서 내가 한국인인척
할테니 넌 닥치고 먹기나 하라.
고 해서 긴장하며 먹었었다는
내용이였다.
그 뒤로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고 모두 참
내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은,
한 3시간 가량 이야기 하는중에
철수의 휴대폰이
계속 울렸는데 내가 받으라고
해도(전화는 아니고 문자였다)
괜찮다며 쳐다보질 않는 것이였다.
그럴거면 폰을 아예 가방에 넣던가..
탁자 위에서 계속 울리는 폰이
여간 거슬리는게 아니였다.
그리고 일본인이 연락
잘 안된다는 소리가 참말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철수는 아기가 둘이며
직장도 제법 탄탄한듯 하고
아무 걱정 없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스스로 그런 안정된 생활에
안주하면 안되고 계속
도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그런 사람을 싫어 한다고..
그러면서 이젠 중국어 공부도
시작 했고,주말이나 그럴때
무료로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한국어 강의를 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 때가 3월이였고
그 이후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런 글들을 올렸었는데
안타깝게도
자신이 녹음한 한국어
발음을 듣고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그 따위 발음으로 뭘 가르치냐?”
는 식의 욕을 먹고
꽤 상처를 받은 듯 했다.
어찌 되었든 좀 편안하게
사는 생활을 꽤 경계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이 있는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질문을 했다.
슬램덩크를 보면
이해 안가는 부분이 있다.
변덕규는 요리사 할건데
왜 그렇게 인생 다 걸고 미친듯이
농구 하냐?
채치수 처럼 강압적으로
그런식으로 하는게 맞냐?
그냥 부활동 아니냐?
예를 들어
가수가 꿈인 사람이
농구부에 들어가 그렇게
힘든 부활동을 하는게 맞냐?
자기 장래와 연결 되는걸
하는게 맞지 않냐?고..
그러자 웃으며 철수가 말했다.
“그건 너무 마음이 가난한게 아닌가요?”
(정확하게 이렇게 말했다)
거기에 대해 더 논쟁은
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현재의 행복도
누리지 못하는
지금의 철수의 마음이 가난한게
아닐까 싶었다.
자기 마음이 끌리는대로
각자가 스스로가 알아서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왜”열심”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할까?
어찌 되었든
그렇게 고맙게
인터뷰를
마치고
난 귀국 후,
그 영상을 완성해
철수에게
보냈다.
그런데 일주일이 넘어도
대답이 없는 것이다.
라인 메세지는 읽음.으로 뜨는데도..
그런데 내가 팔로우 하는걸
아는 소셜미디어에 철수의
글은 계속 올라오고
심지어 내 글에 철수가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다.
그래서 한 보름 지난 후,
메일을 보냈다.
혹시 내가 뭐 실수한게 있느냐?
왜 라인 대답을 안하느냐.라고
그랬는데 대답이 없었다.
또 며칠이 흐르고
철수가 또 내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 소셜미디어
메세지로 글을 보냈다.
메일 보낸거 보라고.
그랬더니 다음날 메일로도
소셜미디어로도
대답이 왔다.
아,자기는 라인 대답한줄
알고 있었는데 안보냈었네?
그 영상 보느라고 까먹은
모양이다.
내가 실수한거 없고
아무 악 감정도 없다.
대답 못해서 죄송하다.
“……”
좀 깨는 감이 있지만
어쩌겠나?
그래도 여러가지
신기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고
이것도 인연이니
다음에 토쿄에 갈때도
한번 더 만나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