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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영업의 모든 것 - 제1탄

영업사원 실전노트

by 영업본부장 한상봉

사내영업의 모든 것 - 제1탄 (잘해온 사내영업은 인간의 수명까지도 좌우한다)


슬슬 입술이 씰룩거린다. 뭔가 얘기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표정일 때 나오는 첫 번째 신호다. 영업1팀장은 늘 저런 식이다.


- 할 말 많은 영업1팀장 : 봉팀장님, 이번엔 저희가 순서잖아요. 저희가 이번 프로젝트 얼마나 오랫동안 고생해서 준비해 온 줄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이번 제안서는 저희가 먼저 진행하게 해 주세요.

- 양보는 없다 영업3팀장 : 고팀장님. 우린 뭐 고생 안 하고 놀면서 하나요? 그리고 순서 얘기하시는 데 여기 사업기획팀 김팀장님도 계시지만 그동안 진짜 양보는 저희 팀에서 주로 한 걸로 아는데요? 그리고 여기가 무슨 에버랜드 청룡열차 타는 뎁니까? 순서 따지게?"

- 막무가내 영업1팀장 : 암튼 안 돼요. 제안서 제출시한도 저희가 먼저고, 김팀장님 저희꺼 먼저 해주세요. 가만 보면 전 왜 항상 김팀장님은 봉팀장님 부탁만 들어주시는 거 같죠?"


제안서를 쓰고 PT를 담당하는 사업기획팀 김팀장은 의문의 1패다. 그런데 딱히 반박을 안 한다. 영업1팀장 말이 어느 정도는 맞기 때문이다.


김팀장은 나랑 아주 친하다. 사실은 대학 때부터 내 친한 친구고 이 회사에도 내가 추천해서 스카웃되어 온 걸 영업1팀장도, 아니 회사의 모든 사람이 다 안다.


발표는 물론이고 제안의 핵심포인트도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제안서를 쓸 줄 아는 인재다 보니 모든 영업팀장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경쟁회사에도 사업기획팀장의 역할을 하는 이가 있지만 영업마인드까지 갖추고 접대자리까지 열심히 같이 가주는 사람은 아마 김팀장이 유일하리라. 그걸 아니까 중요한 제안이 있을 때마다 이런 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 의문의 루저 사업기획팀장 : 일단, 제안서 제출시점 좀 다시 확인하고 저희 팀원들 상황도 좀 볼게요. 이렇게 싸우셔도 어차피 다 제안서 잘 제출하고 그럴 거 아시잖아요. 제가 잘 어레인지 해볼게요.


말은 저렇게 해도 결국엔 우리 팀 제안에 더 신경 쓰고 힘을 줄 거라는 걸 난 다 안다. 이럴 때마다 고객과 하는 영업도 중요하지만 같은 회사의 다른 팀과의 내부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절감한다. 난 사내영업을 잘한 것이다.


실적이 나쁘고 위에서 쪼는 강도가 세질수록 영업팀장들은 예민해진다. 프로젝트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불편한 상황까지 만들면서 애를 쓰는 것이다. 사실 내가 누구보다도 고팀장을 이해해 줘야 하는 사람인 것도 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회사라는 조직은 자연스럽게 내부에서도 경쟁하도록 최적화되어 있는 것만 같다.




사내영업이 안 됐을 때의 문제는 꼭 위의 예처럼 사업제안할 때만 불거지지는 않는다. 사업이 마무리되고 솔루션을 공급하고 나서도 문제는 항상 발생할 여지가 있다. 영업사원은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최전선으로 달려가 고객의 마음을 누그려 뜨려 불이 번지지 않게 해야 하지만, 잔불까지 완벽히 없애는 일까지 할 수는 없다.


결국 기술적으로, 또는 전문적으로 완전히 진화할 수 있는 부서가 따로 있게 마련인데, 그 부서를 적기에 빠르게 투입할 수 있는 평소의 노력, 즉 사내영업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유력 SI업체와 협력영업으로 솔루션을 공급했을 때였다. 최종 엔드유저(갑)는 N사 였고 SI업체(을)는 전체적인 시스템을 공급하고 우리가 병으로 시스템에 포함되는 솔루션을 납품하는 프로젝트였다.


갑자기 우리가 공급한 솔루션이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전체 시스템이 다 먹통이 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SI업체의 최*철 수석연구원은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고 가족들과 차를 타고 여행을 가고 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렸다. 연휴기간에 발생한 문제였던 것이다.


고객은 영업사원에게 전화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영업사원은 그냥 자기 몸을 태워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을 뿐 불을 끄지는 못한다.


난 차를 돌려 최종 고객사로 가면서 고민을 시작했다. 아무리 절체절명의 상황이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서가 따로 있다지만 휴일이 아닌가? 연휴의 시작날 어떻게 얘기를 꺼낸단 말인가? 그 팀의 부서장에게 얘기하는 방법밖에 없지만 그 사람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다행히 난 그 문제를 가장 빠르게 잘 해결할 수 있는 개발자와 아주 친한 사이였고 그 친구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달려와 주었다. 최적의 해결사였기 때문에 문제는 바로 해결되었고 특별한 피해보상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으며 오히려 고객으로부터 휴일인데도 빠르게 조처해 준 점에 대한 감사인사까지 받았다. 사내영업을 잘한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어찌 보면 작은 사례지만 영업사원들은 내가 얼마나 등이 오싹했을지 알 것이다. 그리고 그 개발자친구에게 얼마나 고마움을 느꼈는지도 알 것이다. 영업사원들은 수주의 희열로 10살이 젊어지고 클레임의 스트레스로 20살이 늙는다. 그 친구는 나에게 안티에이징을 선사해 준 것이다.


잘해온 사내영업은 인간의 수명까지도 좌우하는 모양이다. 그럼 어떻게 사내영업을 해야 할까? 2탄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사족 : 사내영업에 관한 이야기는 영업사원 생존소설 봉팀장의 하루에서 도입부를 가져다 쓸 예정이다. 옛날 어느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던 경영지원본부 본부장님은 회사에서의 일이 마치 연극무대같다고 한 적이 있다. 자기가 자리에서 멀찍이 앉아 바라보면 출입구와 로비를 직원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마치 연극을 하듯 대사를 하고 등장하고 퇴장하고를 반복한다나 뭐라나. 참 재미있는 관점으로 시점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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