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월 Oct 13. 2024

소소하지만 따뜻하게

디자인 팀장입니다만

하루가 저물고 고요히 내려앉은 적막함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으로 몇일 전의 모습들까지 다시 기억의 저장공간으로 소환중이야.


일단 내가 처리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일들을 해내느라 여전히 바쁘긴 하지만 결과물이 나오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구. 그리고 마지막 컨펌단계에서 "좋은데요" 이 한마디로 그간의 노고가 녹아 내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거든. 어쩔땐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이 막막할때도 있었는데 해내고 싶다는 열망으로 추진력을 얻어 전진했던 건 잘한 일 같아.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인생이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종종 신입직원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질문을 할때 성심성의껏 설명을 해주고 사기를 북돋아주도록 있는 지식을 한껏 조합해보고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설명에 열을 올릴 때, 다시 한번 그의 눈빛을 확인한 다음 안도의 표정을 보고나면 내 설명이 괜찮았구나 생각이 들거든. 그리고 신입 직원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하단 말이지. 내가 이끌어 줄 몇몇 사람들에게 100점은 아니더라도 늘 성실하고 노력하는 진취적이고 따뜻하기까지 한 사수의 모습이길.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유자향이 퍼지고 비닐 뜯는 소리에 귀가 반응해서 옆자리의 신입 직원을 쳐다봤는데 유자젤리를 먹고 있는거야. 향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서 한개 얻어 먹었는데 나의 리액션에 아예 젤리통을 내자리로 밀어주는 신입직원때문에 한참을 웃었어. 그렇게 두세개를 더 뜯어서 우걱우걱 먹으면서 행복했던 기억. 배고파질 시간에 달달한 군것질은 언제나 옳지!


구내 식당엔 미니 떡갈비가 거의 단골메뉴였어. 떡갈비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나가서 먹자는 말이 굉장히 반가웠지. 그런데 몇일전 부터인가 구내 식당의 밥이 맛있어졌어. 떡갈비도 거의 나오지 않았고 반찬의 종류나 맛이 더 맛있게 바뀐거야. 그래서 식판에 잔뜩 떠서 이걸 다 먹고 가겠노라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맘편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또 얼마나 행복했는지.


혼밥 좋아하는 나라서 좋았고 맛있는 걸 천천히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리고 점심시간이 한시간이나 된다는 거에 감사했으며, 혼자 남아서 끝까지 먹겠다는 굳은 의지의 직원에게 모닝커피가 아직 남아있는지 물어봐주는 상사의 말도 너무 따뜻했어. 밥도 주고 커피까지 사주는 회사. 너무 매력적이지 않아? 게다가 밥도 이젠 너무 맛있어졌고 말이야. 든든히 먹고 힘내서 오후를 또 달려볼 생각이야. 가끔 너무 먹어서 졸음이 쏟아지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럴땐 양치를 하거나 전화통화를 하면 졸음을 깰 수 있어!


퇴근시간에도 좀처럼 마무리가 되지 않는 일을 끌어안고 있는데 신입직원이 눈치를 보면서 일이 더 남아있는지 물었어. 신입직원은 일이 끝난 것 같아 얼른 퇴근하라고 얘기해 주었는데 방긋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거야. 우리 일끝나면 눈치보지말고 퇴근하자고 다시 한번 말해 주었어.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퇴근은 빨리빨리 하자구!


꼰대 스타일의 상사는 나도 싫어해서 난 꼰대스럽지 않게 직원들을 편하게 대해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어. 다행히 우리 직원들이 다 너무 착해서 잘해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고 말 한마디라도 더 걸어주고 싶고 이름 한번이라도 더 불러주고 싶고 퇴근 못하고 있으면 격려해주고 싶어. 내가 인복이 많은지 모난 사람 한명 없이 다들 잘 지내주어서 내가 더 신경쓰기로 했어. 신입땐 잘해주는 사람이 최고거든!


신입 직원들이 종종 일이 잘 안풀릴때 동공이 흔들리거나 긴장한 모습이 보이고 힘들어 할 때가 있어. 나의 신입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그럴땐 평소보다 몇배는 더 친절해지곤 하는데 특히 칭찬을 마구마구 해주는 거야. 그럼 또 거기에서 자신감이 생기거든. 활기찬 사무실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 또한 내 임무니까.


어느새 팀장이 되어 있는 내 자리는 무거움보단 함께 이끌어 나갈 동료애로 가득 차있고 못하는 일에 대한 질책보단 해결방법에 대한 힌트를 제시해 주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상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어. 사람마음 다 똑같더라. 내가 힘들때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든든한 것처럼 우리 직원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팀장이 되고 싶어.


오늘도 따뜻하고 행복한 하루로 기억되길!

이전 07화 겨울밤의 멜로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