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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기업퇴사후 명상선생님이 되었다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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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명상안내자 지후 Oct 22. 2023

아무도 이유를 모른다는 힘겨운 통증의 기억

대기업 퇴사 후 명상선생님이 되었다고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꺼내면 마음이 알싸해지는 그때의 기억.

그 일은 직장생활 4년 차 즈음에 일어났다. 지금 생각해도 꿈같았던 나의 첫 직장 CJ에 재직할 때였다. 마케터로 성장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기업에서 그것도 꼭 하고 싶던 마케팅, 그중 광고홍보를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 업무는 내가 꿈꾸던 가장 이상적인 일이었다. 쉽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끔 이것이 정말 현실이 맞을지 확인할 정도로 아찔하게 행복했다. 나는 회사가 좋았고 나에게 주어지는 일이 좋았고 선배들이 좋았고 동기들이 좋았다.

나는 잘하고 싶었고 도전하여 쟁취하고 싶었다. 그리고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그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가 그것을 처음 증명할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신입으로 입사해서 몇 년간 선배들의 일을 서포트하는 역할에 그쳤다면, 드디어 내가 주도적으로 내 손에 실무를 쥘 수 있을 때가 바로 그때였다.

링 위에 올라선 기분이었다. 나는 더욱 힘을 꽉 쥐고 출근을 했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도 멀쩡한 남자동기들을 보며 은근한 경쟁심을 느끼기도 했다.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계속 스스로를 채근했다. 조금씩 책임이 커질수록 몸엔 힘이 더 꽉 들어갔다. 일이 잘못되면 모두 내 책임인 것 같았다. 나는 부족한 점이 많으므로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이슈로 일이 성사되지 않을 땐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가끔 공격적인 리더와 함께할 때도 모든 문제가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치고 피로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성장을 위한 과정이라고 여겼다. 지금의 나의 상황은 너무나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 힘든 것은 힘듦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부정적인 생각이 날 때마다 되뇌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이 정도는 모두가 겪는 일이야, 참고 견디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덮친 화마처럼 머리에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늘 그랬듯 별일 아니라는 듯이 두통약을 털어 넣고 하던 데로 힘을 꽉 주고 출근을 했다. 약을 먹으면 몇 시간은 견딜만 했다. 그런데 그 후로 조금씩 다른 증상들이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다가 어지러웠다. 어지럽고 나서는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다 온몸에서 열이 났다. 열이 나기 시작하면 온몸의 에너지를 누군가 빼앗아 가기라도 하듯이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기운이 떨어졌다. 병원을 몇 군데 찾아다니고 진통제를 먹고 한약을 지어먹어가며 또 대충 버텼다. 그때도 생각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이 정도는 모두가 겪는 일이야'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던 버스에서 주저앉아 버리고 나서야 나는 이 통증의 수위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멀쩡히 하고 있는 것을 내가 힘겨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겨우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눈앞에 보이는 저 깃발을 뽑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후 누군가의 소개로, 인터넷 검색으로 명의가 있다는 병원을 많이도 찾아다녔다. 어느 곳에서는 '이런 몸으로 어떻게 살죠? '라는 자극적인 멘트를 듣기도 했고, 약 잘 먹고 운동하면 좋아질 거라는 성의 없는 희망의 메시지를 듣기도 했지만 그렇게 여러 병원을 방문하고 내린 결론은 내 통증의 원인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는 더 지쳐갔다. 차라리 원인을 알고 병명이 있다면 약을 먹고 수술이라도 받을 수 있으련만 내 증상의 원인은 알 수가 없었고 그 사실이 나를 더욱 처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1년에서 1년 반이 지나갔다. 그 사이 나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나는 가끔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힘들 정도로 쇠약해져 갔다.

나는 회사에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회사에서 아픈 것을 알게 되면 좋을 것이 없다는 한 선배의 조언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티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나의 증상은 눈에 띄게 악화됐고 육안으로도 충분히 나의 상태를 알 수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스스로 통증을 숨길 수가 없었다. 신입으로 입사해서 동기들이 참 많았고, 모두 건강하게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데 나만 나약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이미 내 마음속에서 낙오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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