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속성이지만 따뜻하지, 아빠?
아빠는 우리 집에서 제일 가볍다.
아빠는 15년 전쯤 위암으로 위절제를 했고 그 후로 살이 찌지 않는다.
지금은 완치한 지 10년도 넘어 정말 오래됐고 살이 안 찌는 덕분에 힙(?)하게 아빠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있다.
나이키 운동복에 다이나핏 티를 입고 다닌다거나.
코닥에서 바지를 사 입는다거나 스파이더 운동화를 신는다거나.
동생과 나의 합작품일 때가 많다.
위에 올린 사진도 내 취향대로 아빠한테 입힌 옷이다.
아, 겨울에 비니만 안 썼으면 좋겠다.
겨울에 비니를 쓰면 완치된 병도 다시 찾아온 것처럼 보인다.
멋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빠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꽤나 동안이라 60세가 넘은 나이지만 더 젊게 살았으면 좋겠는 마음도 있다.
게다가 다른 아저씨들과 다르게 아저씨 술배도 없고 날씬하니 뭘 입혀도 괜찮은 느낌(?)
그런 아빠를 끌고 수액을 맞혀주러 왔다.
더운데 밖에 있을 때가 많다 보니 기력이 쇠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아빠는 병원을 그다지 믿지 않는 곤조.. 를 부릴 때가 있어서 어디 가는지 말도 안 해주고 ‘불속성효녀’인 나는 아빠한테 신분증 챙기고 어디 가는지 묻지 말고 따라오라고 했다.
병원에 도착해서야 아빠 수액 맞으러 온 거라고 말을 했더니 역시나..
아빠 특유의 거부반응을 보이며 도망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제일 성질이 더러운 나를 이길 순 없지.
접수하고 진료실에 따라 들어가서 수액을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는 와중에 아빠가 기분은 내심 좋았는지 간호사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에게 ‘우리 딸내미가 나를 끌고 와가지고.. 아이고 맞을 생각 없었는데..’ 라며 머쓱한 듯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듯했다.
그러고 나는 아빠를 수액실에 눕혀놓고 나왔다.
내심 기분 좋아하는 모습.
불속성효녀는 기분 좋게 카페에 와서 아빠 허락도 없이 아빠 병력을 밝히며 글을 쓰고 있다.
사실 나는 수액 맞는 걸 좋아해서 회사 다닐 때 너무 힘들면 조퇴 끊고 나와서 맞곤 했는데 20분 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아빤 이것저것 많이 넣어서 그런지 2시간이 걸린다 하네.
어떻게 기다리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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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