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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Blue)한 토요일엔 파란 수국을

내가 줄 수 있는 건 좋댓구알

by 반항녀

하루 종일 낮잠을 자고 일어나 하루를 날려버린 듯한 꿀꿀함과 요 며칠 동안, 아니 요 몇 주 동안 정신적으로 끙끙 앓던 것까지 몰려들어 블루한 기분의 토요일이었다.


지금도 그 토요일이다.


카페에 앉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 요 근래 새롭게 생긴 내 힐링 아이템 꽃을 사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섰다.

<**동 꽃집>을 카카오맵에 검색을 하니 몇 군데가 나왔다. 그중에 가장 세련돼 보이는 이름의 꽃집으로 향했다.


꽃집마다 가지고 있는 꽃이 다르기에 이 꽃집에는 내가 아직 가져보지 못한 어떤 꽃이 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골목골목 걸어보지 않은 길을 어둑해지는 시간에 걸으니 더 우울해질 것 같던 내 기분은 오히려 하늘이 공감해 주는 듯한 기분에 위로가 되는 듯싶었다.


처음 도착한 꽃집은 주말이고 추워져서 그런지 영업시간보다 일찍 문을 닫고 있었다.


꽃장고를 보니 예쁜 꽃들이 꽂혀있어 아쉬웠다. 그래도 집까지 가는 길에 네다섯 군데의 꽃집이 더 있어 좌절하지 않고 다음 꽃집을 향해 걸었다.


안타깝게도 그다음 집도 문이 닫혀있었다. 속이 상하려 해서 ‘못 사면 어때~’하는 마음으로 고쳐먹었다.

요즘 내가 인스타그램으로 꽃을 보고 게시물에도 꽃을 올리다 보니 ‘탐색창’에 예쁜 꽃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걸 보며 위안삼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음 꽃집. 동네 시장 쪽에 있는 ‘행복한 꽃집’이던가. 이름마저 친근한 느낌의 꽃집. 어릴 때 흔히 보던, 흔히 봐서 쉽게 지나치던, 출입문에 빨간 글씨로 ‘꽃’이라고 박혀있는 꽃집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슬쩍 들여다보니 화분 꽃만 파는 집이었다. 화분은 내가 키울 자신이 없어 지나쳤다. 이렇게 보니 꽃을 너무 일시적 소비체로 보는 건가 싶어 약간 찔렸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분양샵에서 분양하는 것 같은 느낌? 인위적으로 자른 꽃을 사서 며칠 즐기다 버리는 게 그런 것과 다를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하지만 길가에, 화단에 피어있는 꽃을 꺾는 건 더 나쁜 것이니 하는 요상한 혼란이 들며 다음 꽃집을 향해 걸었다.


다음 꽃집은 다행히 ‘꽃장고’가 있었다. 나이가 꽤 드신 사장님이 편하게 앉아 티비를 보고 계시는데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요즘 젊은 사람이 꽃을 이런 곳에서 사는 일이 드문지 사장님께서 젊은 사람이 무슨 일로 꽃을 사러 왔냐고 물어보셨다.


스몰토크를 좋아하는 나는 오늘의 토크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냉큼 답했다.


“아, 조금 우울해서요. 요즘 꽃 보면서 힐링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꽃을 골랐다. 처음에 화사한 분홍색의 카네이션의 가격을 여쭤보았다. 2,000원. 카네이션은 특정한 날에 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약간 망설였는데 사장님께서 꽃장고에서 카네이션 한송이를 꺼내셨다. 살짝 당황했지만 다른 꽃도 더 살펴봤다.


뭔가 헛헛한 마음에 풍성하게 꽃이 꽂힌 화병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한 다발로 묶여있는 수국을 집었다.


수국 한 다발은 7,000원. 수국으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수국을 챙겨주시며 물어보셨다.


“왜 우울하요? 젊은 사람이. “


그 질문에 이러쿵저러쿵 간단히 답을 드렸다.


“요즘 나라 꼴도 개판이고 산불도 나서 마음 편하기 어려울거여. 자네가 겪은 그 일이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다 자양분이 되어서 힘이 될 거니까 지금만 잘 이겨내. 나도 산에 약초 캐러 다니는데 넘어져봐야 더 조심한다고. 지금 넘어진 거 내 나이쯤 되면 아무것도 아니야.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해. “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나도 알고 있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 입에서 들을 때 한 번 더 위로가 되는 말들.

감사했다.


그러면서 신문을 펼쳐 수국 다발을 말아주시는데 아까 꺼내두었던 카네이션을 힘내라고 주는 선물이라며 같이 말아주셨다.


소소한 행복.


그 다발을 안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문을 열고 나오면서 한 말씀 더 하셨다.


”괜찮아질 거라고 내가 보장해요. “


그러면서 명함을 주셨다.


”유튜브 구독해줘요. “


꽃집 사장님은 약초 캐는 유튜버셨다. 그러고 나와서 가게를 둘러보니 약초도 팔고 계셨다.


이런 위로를 받고 유튜브 구독쯤이야. 얼마든지.


그러고 신문에 쌓인 꽃다발을 안고 집까지 걸어오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행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7,000원에 꽃다발을 안고 오며 행복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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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집에 와서 화병에 수국 줄기를 적당히 잘라 꽂았다. 예쁘다.

그러고 보니 내 요즘 취미가 독서와 꽃 감상하기가 되어버렸는데 표면적으로만 보면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교양 있는 귀족 집 가문의 처자(?) 같다.

Q: 혜리씨의 취미는 뭔가요?

A: 제 취미는 독서와 꽃감상 입니다.


누가봐도 구라, 하지만 찐.



매력도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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