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도보일상을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한때 두 발로 어디든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꼈는데,
차를 자주 타다 보니 그 편리함에 익숙해져
걷는 시간을 점점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런 일상을 이어가다 보니 살도 찌고,
여러모로 게을러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동네.
어느덧 이 부근에 산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중간에 이사를 여러 번 했지만,
나는 늘 걸어서 광안리에 닿을 수 있는 거리 안에서만 움직였다.
걸어서 광안리라니, 정말 축복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아침, 눈을 뜨니
파란 하늘에 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기온은 꽤 내려갔지만, 쾌청해 보이는 날씨에
걷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아침을 먹고, 빠르게 씻고, 운동화를 신고 나섰다.
연식이 꽤 있는 동네라 길을 걷다 보면
정감 가는 장면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런 길을 걸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식당에서 풍겨 나오는 밥 냄새, 돼지국밥 냄새,
탕제원의 약 달이는 냄새,
동네 빵집의 따뜻한 빵 굽는 냄새.
일부러 시장 쪽으로 길을 돌렸다.
젓갈 냄새, 생선 냄새, 튀김 냄새.
그리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
그들끼리 주고받는 안부 인사 소리까지.
울퉁불퉁한 바닥이 발바닥으로 느껴진다.
바닥을 보다가, 전봇대 사이 피어 있는 풀을 봤다.
‘너희는 어쩌다 이런 데서 이렇게 오순도순 자랐니?’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주택가를 지나며 어르신들이 직접 쓴 경고문도 읽었다.
가끔 맞춤법이 틀려 있긴 하지만,
그것마저 왠지 더 강력하게 느껴졌다.
익숙한 동네인데도 오늘 처음 본 곳도 있었다.
춤 강습소에 적힌 ‘지루박’이라는 단어.
들어본 적은 있지만, 춤의 이름이라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자전거 앞 바구니에 실려 가는 귀여운 강아지도 보였다. 괜히 혼자 웃음이 났다.
일요일 아침,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와 강아지.
마냥 즐겁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벚꽃이 벌써 피어 있었다.
아니, ‘벌써’가 맞을까?
날이 아직 추워서 그런지, 조금은 이른 것처럼 느껴졌다.
찍으려 했지만, 하늘을 배경으로 한 벚꽃은 자꾸만 역광으로 나와 눈으로만 보기로 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오는 길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였는지 깨달았다.
일상에 잠겨 있던 복잡한 생각들은 닫아두고
나는 오롯이 길 위의 그 순간들을 느끼고 있었다.
행복하다.
행복하니까… 살도 좀 빠져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