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서브스톰 - 2

by 화진


“장례식을 하지 말라고?”


호스피스병동 침대 옆 창틀에 놓아 둔 화병의 연보랏빛 클레마티스 세 송이가 문비의 놀란 되물음에 여리게 흔들렸다. 포크에 찍은 애플망고를 엄마의 입으로 가져가던 문비의 손이 무릎으로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되물어 놓고는 자신의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와 버린 장례식이라는 말이 경악스러워 가슴이 덜컥했다.


“어, 하지 마. 올 사람도 별로 없고, 너만 번거롭지 뭐. 돈도 들고. 우와 그 애플망고 맛있겠다. 어서 주세요, 따님. 아아아.”


모이 받아먹는 아기새 시늉을 내는 정인은 밝았다. 피골이 상접하다시피 야위어서는 복수腹水가 찬 배만 볼록하고 눈과 얼굴과 온몸이 노르께했지만 그녀는 활기를 잃지 않았다. 농담과 우스갯소리 들을 잘도 했다. 여전히 형형한 눈빛으로.


하지만 문비는 알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보내는 시간 동안 저렇듯 예사로운 척 씩씩한 척을 하는 것이 엄마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자신이 돌아간 뒤에 홀로 남은 병상에서 엄마가 어떤 모습으로 기진하여 쓰러지는지. 자신이 거기까지는 모르기를 엄마가 바라므로 문비는 모르는 것처럼 굴었다.


요사이 이 모녀에게는 ‘척’이 일이었다.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 알고도 모르는 척.


“화장하고 바로 수목장하면 되지. 채선이모가 도와줘서 다 준비해 놓았고, 나무도 찜해 뒀어. 아주 잘 생긴 잣나무야. 솔직히 얘, 엄마는 소나무보다 잣나무가 훨씬 운치 있더라.”


조그마한 애플망고 한 점을 오래도록 우물거리며 정인은 남의 말 하듯 태평하게 자분자분 일렀다. 채선이모는 문비가 부르는 호칭이고 실은 그녀는 정인의 절친한 친구였다.


화장이니 수목장이니……. 엄마가 하는 말들이 문비에게는 멀고 생경했다. 엄마의 병명이 췌장암 말기라고 의사가 확진하는 자리에 문비도 함께 있었고, 얼마 전 호스피스병동을 알아보고 입원을 강권한 것도 문비였다.


그런데도 문비는 엄마가 죽어간다는 인식이 들지 않았다. 도무지 엄마와 죽음이 연결지어지지 않았다. 문비에게 그 문제는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 그 병으로 하여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과는 전혀 별개였다.


“먹을 만해?”


문비는 말을 돌려 싫은 화제를 회피해 버렸다.


“문비야.”


정인이 문비에게서 애플망고 접시와 스푼을 빼앗아 오버베드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맥없이 늘어뜨린 문비의 두 손을 정인의 깡마른 두 손이 다감하게 모아 잡았다.


“문비야.”


침착하고 부드럽지만 어둡지는 않게 정인이 한 번 더 딸의 이름을 불렀다. 창백하게 굳어진 얼굴을 떨구는 문비의 심정을 정인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알아, 우리 딸 마음. 엄마도 그랬거든. 나도 우리 엄마는 영원히 살아 있어줄 것만 같았으니까.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데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 같은 거 상상조차 안 됐었으니까, 하지만…….”


외할머니는 10년쯤 전에 세상을 떴다. 미국의 외삼촌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이른 새벽이었는데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수화기를 껴안고 있던 엄마의 모습을 문비는 기억한다. 여명이 번지는 창밖만 고집스레 응시하던 얼굴을. 푸른 새벽빛도 스미지 못하던 텅 빈 눈동자를.


“거의 대부분의 엄마가 자식보다 먼저 죽어. 당연한 이치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불행한 거야.”


안간힘 다해 눈물을 참느라 문비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최근 문비는 수시로 눈물을 흘렸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지는 눈물샘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나 동정의 시선을 받는 난감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혹은 햄버거나 커피를 주문하다가도 눈물이 투두둑 떨어지곤 했다. 눈물방울은 돌연하고도 굵어서 자주 문비를 당황시켰다.


그러나 문비는 엄마에게만은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괜찮은 척과 모르는 척의 아슬아슬한 토대 위에서나마 아직은 지켜지고 있는, 모녀가 공유하는 평범한 일상의 한때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언제까지라도.


“엄마는 장례식 대신 우리 딸이 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그게 뭔데? 문비가 눈짓말로 물었다. 가까스로 참아낸 눈물이 목과 가슴의 안쪽에 뭉클뭉클 엉겼다.


“부탁이라면 부탁이고 유언이라면 유언이야. 꼭 엄마 말대로 하겠다고 약속해.”


표정은 변함없이 온화했지만 어조는 비장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진지했다.


“알았어, 약속할게.”


까닭 모를 쓸쓸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문비가 하릴없이 대답했다.


“수목장 끝나거든 선걸음에 바로 여행을 가, 알았지?”


베개 밑에서 통장을 꺼내 문비의 손에 쥐어주면서 정인은 힘주어 말했다. 오로지 여행을 위해 따로 들어 놓은,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조금씩 목표액을 키워가며 오래 부어 온 적금이었다.


문비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예비하던 돈이었다. 더 넓은 세상,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풍광, 보다 다채로운 삶의 장면들, 고색창연한 옛 사원과 이국의 고풍스러운 거리…….


“여행?”


엄마가 죽자마자 여행을 떠나라니. 문비가 듣기에는 장례식만큼이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문비는 문득 엄마가 낯설었다. 문비가 아는 엄마는 유쾌한 사람이었지 엉뚱한 사람은 아니었다.


“네가 가장 보고 싶은 게 뭔지. 그걸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금부터 잘 생각해 보고.”


정인은 네 조각째의 애플망고를 손을 저어 물리쳤다. 그녀가 죽기 사흘 전의 일이었다. 애플망고는 정인이 생전에 먹은 마지막 음식이 되었다. 이후로 문비는 애플망고를 먹지 않는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


문비는 침대 옆에 놓인 취침등을 켰다. 육각형의 LED 조명이 파르스름하게 빛나며 희미하게 주위를 밝혔다. 방금 전 꾸던 꿈이 생생했다. 오로라 서브스톰을 보던 날의 꿈이었다. 눈꺼풀에서 점멸하는 꿈의 잔영을 곱씹으며 기지개를 켜던 문비는 열이 내리고 몸이 가뿐해졌음을 깨달았다. 꼬박 하루 하고도 한 밤을 호된 몸살을 앓고 일어난 참이었다.


카디건을 걸치고 마당으로 나간 문비는 키 큰 낙엽송 아래의 들마루에 걸터앉았다. 인공적인 불빛도 없고 자동차 배기가스도 없는 산골짜기의 새벽. 청결한 어둠에 잠든 숲이 싱그럽다. 쌀쌀하지만 봄기운을 머금은 차분한 공기를 음미하며 문비는 엄마를 떠올렸다.


죽기 전 엄마는 의식을 잃었고 완전히 의식을 잃기 전에는 섬어를 중얼거렸다.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헛소리였는데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몇 마디 안 되었다. 용케 귀에 들어온 말 가운데 하나가 ‘오로라’였다. 누군가를 향해 엄마는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거기에선 너도 볼 수 있는 거지, 오로라?’ 하고.


그 말 때문이었다. 문비가 오로라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던 건.


엄마는 왜 하필 여행을 가라는 유언을 남겼을까? 잠꼬대 같은 섬어로 엄마가 이야기를 나눈 상대는 누구였을까?


돌연하게 들려오는 미려한 선율이 문비의 상념을 흩었다. 바이올린 곡조였다. 고개를 돌리니 개울 너머에 위치한 건넛집 별채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빛이 눈에 들어왔다.


라디오라도 켜 놓은 건가? 고요가 짙어 소리는 투명했다. 곡명을 알 수 없는 바이올린 선율이 문비는 이내 좋아졌다. 풍성한 음에서 비통한 아름다움이 배어나는 곡이 끝나고 다시 적요해졌을 때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아쉬움이 밀려왔다.


약간의 기대를 품고 다음 곡을 기다렸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쩌면 누군가가 직접 연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이 문비의 뇌리를 잠깐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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