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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슬 Jun 17. 2024

나의 콤플렉스를 가려줄 나만의 컨실러(下)

'나의  콤플렉스를 갈려줄 나만의 컨실러 上'은  <장애의 대한 부정적 시선>을 주제로 썼지만, 이번  이야기는 그것에 연장선으로 갈 수도 있지만, 이 콤플렉스를 꺼내서 보여주고 싶다.  

             

내 신체 부위에 굉장히 많은 수술 자국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수술을 많이 해서 어렸을 때는 굉장히 내 수술 자국이 부끄럽기도 했다. 특히 여름에는 많이 곤란할 정도로 부끄러웠던 이유가 나의 평소 스타일이 자기주장이 강력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많이 짧고 하다 보니 움직일 때 편한 아주 큰 장점이 있는 대신에 <수. 술. 자. 국>하면서 자기주장이 강한 수술 자국이 훤히 보인다.  

              

엄마가 수술 자국에 연고를 꼼꼼하게 발라줘서 그래도 의학적으로는 '관리를 굉장히 잘했네요'라고 그러한 말을 많이 들었다. 특히 초등학교 때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없었지만, 부끄러움이 굉장히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비키니 입을 거니까 예쁘게 꿰매주세요"     

라고 웃으며 초등학교 때 수술할 때 웃고 있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했었지만, 의료진분들은 웃으며 알겠다고 하셨다.              

  

예쁘게 꿰맨다고 꿰맸겠지만 표시가 백 퍼센트 표시가 안 날수 없는 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될수록 속히 말해서 '머리가 커진다'라고 이야기를 할 때 그때는 내 대답은 달라졌다.      

"수술 자국 있는데 어쩌라고"     

이런 반응으로 확실히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아마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게 나의 방어기제 같기도 하였다.     


중학교 때는 '그냥 쳐다보면 쳐다봐라 어쩌라고'하고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마지막으로 하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 수술은 '네 인생에 마지막으로 수술을 할 것이다.'라고 내 주치의 교수님이 나에게 말씀을 하였다. 나는 그때는 굉장히 감이 생기면서도 의미심장하였다. 수술 전 수술 부위를 네임 팬으로 표시를 해주는 과정이 있는데 놀랄 정도로 표시가 있었다. 굉장히 수술 부위가 굉장히 컸기에.     

굉장한 찜찜한 기분이 나를 휘감았다.               


드디어 수술실 전에 회복실(대기실)에 있는데 어렸을 때나 들어오셨던 목사님 같은 분이 나에게 다가와서 기도를 해주셨다. 그 기도가 나에게 큰 위로와 따뜻한 격려가 되었다.(내가 다니던 병원은 종교가 기독교인 곳이었다.)               

수술 몇 분 전에 주치의 교수님이 다리를 따뜻하게 잡으시며 안심을 시키며 나를 보셨다.     

"잘해줄게. 걱정하지 마."     

라는 말씀에 나는 작은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고등학교 때 수술한 곳을 보니 굉장히 컸기 때문에 성형외과에서 수술 흉터를 지우기 위하여 성형외과에서 수술 흉터제거 수술을 알아보았지만, 다른 아이들의 수술 흉터를 제거 수술을 한 것을 보니 제거 수술을 했는데 더 덧나는 일이 많았다. 이게 부작용 중 하나이기에 무서워서 하지 않았다는 점.    

           

대학교 때도 지금처럼 날씨가 더워질 즘에는 여전히 내 옷차림은 짧아졌고, 성인이 되다 보니 혼자 갈 때 병원에 나의 20년 이상 재활치료를 해주신 선생님을 만나러 한번 갈 때 택시 기사님이 나를 보며 이야기하셨다.               

"젊은 사람이 어떡해.."     

라고 이야기를 하시며 시선은 내 다리에서 가장 큰 수술 흉터를 바라보며 이야기하셨다.               

"..."     

무시도 답이라고 했다. 무응답도 답이니.         

      

그는 다시 한번 내 다리 흉터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이거 하려면 비싼 흉터예요"     

하며 웃으며 능글맞게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 가슴에 대못 박았네."     

라는 내 마음을 마음을 칼이 꽂히듯이 아프고, 괴로웠다.                

"..."     

그렇다. 무응답도 응답이니.            

   

병원이 끝날 때쯤, 선생님께서 시간 있으실 때 주로 한 번씩 병원에 가기도 하였다. 간단하게 커피를 사서 치료실에 가기도 하였다. 가끔이지만.             

  

쫑알쫑알 택시에 있었던 이야기를 촉새처럼 하였다.               

"여기 수술한 게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비싼 흉터'라고 표현을 했어요.  모든 택시 기사님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운이 안 좋았죠."     

웃으며 능글맞게 말했다고 이야기했다.     

          

약간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괜찮냐는 눈빛으로 내 말에 대답을 하셨다.

               

"다슬아 괜찮아? 그래도 많이 컸네 받아칠 줄도 알고 네 말대로 오늘 운이 안 좋았네. 그리고 네가 기분이 안 좋으면 대답 다 안 해도 되는 거야. 꽤 능글맞아졌다 대학 하더니?"               


"네 그러긴 했어요. 제가 능글맞아요?"

                         

"응 오늘 좀 힘을 좀 빡! 주고 왔네 저녁에 약속 있어?"

               

"아뇨.??."     

나는 갸우뚱했다.       

        

"되게 예쁘게 하고 왔네 네가 이렇게까지 커서 온 게 신기하다 신기해."   

            

나는 수줍게 웃고 서로의 근황을 묻고 나는 인사를 하고 다시 기숙사로 다시 돌아갔다.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멍하니 생각을 했다.           

    

'싸우기 싫어서 했던 행동인데 그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능글맞아 보이는구나 신기하네 나름대로 나의 센스라면 센스랄까?'              

 

지금도 가끔은 가장 큰 수술 흉터는 타투를 하고 싶지만, 생각하다가 회피해버리고 말아 버린다. 되게 큰 수술 흉터는 타투 시술이 아닌 타투 수술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창피함' 보다는 하나의 예술로서 타투를 해보고 싶은 마음과 호기심으로 앞서있다.     


지금은 내 콤플렉스를 내 특유의 '능글거림'으로 대면하고 있는 것 같다.               

'능글거림' 또한 내 하나의 센스 있는 컨실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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