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정 핼러윈 일상 그리고 작별 준비

미국 귀향 열네 번째 날 (Oct. 2nd)

by Clifton Parker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10월까지는 최근의 귀향이야기를 먼저 쓰고 11월부터 2022년의 미국이야기를 마저 이어 쓰려합니다.


"미국 귀향-지난주엔 "안녕?", 이번 주엔 "안녕!""에서 계속


미국에서 2년간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2년을 보낸 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잠시 돌아왔습니다.
"뉴욕 Home"에서 18일간 머물면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그날그날의 일들을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정리하곤 했습니다. 이 글은 아래 슬라이드에 담긴 것을 풀어쓴 것입니다.


열네 번째 날 이야기

이틀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 언제 다시 이곳을 오게 될까? 다음 주엔 이곳을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만나고 싶은 사람들, 그들과 하고 싶은 일들은 끝도 없다. 나의 마지막 날인 내일은 나에겐 미국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Owen & Jean과 보내야 한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사진) 미국 귀향 열네 번째 이야기 - 오랜만에 어렵게 만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내기에 2주는 너무 짧았다.

- 영어 선생님을 평생을 살아온 Arthur는 지금도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한다. 우드버리 아웃렛에 갔을 때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글을 쓰고 있다며 오랜 시간 써온 소설이 어느덧 완결을 앞두고 있어서 실제 책으로 출판을 하고 싶다고 했었다. Arthur가 문자를 보내서 오늘 출판사와 미팅이 있는데 같이 가겠냐고 해서 당연히 따라나섰다. Arthur의 집에서 40분 정도 출판사까지, 이번엔 Arthur가 운전하기로 했다.

그의 차는 미국에선 보기 힘든 아주 작은 차(Mitsubishi Mirage)다. 심지어 수동이고 내비게이션도 없다.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기술의 편의에 잠식당하는 게 싫단다. 그러면서 자기는 고속도로 운전은 정말 싫다면서 한가하고 경치 좋은 국도로 가잔다. 고전적이고 깐깐하신 할아버지다. 수동차 소리 참 오랜만이다. 국도를 따라가며 Arthur가 일하고 있는 학교(Siena College), 존재조차 몰랐던 거대한 Mansion들, 지역의 역사 등을 얘기 나누며 드라이브를 즐긴다. '이런 게 있으니 고속도로는 싫다고 하시는구나.'

마치 창고처럼 생긴 출판사 건물은 허허벌판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Arthur는 그저 자신의 글을 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아왔고 노트 한쪽을 가득 채우도록 질문들을 적어왔다. 젊은, 그러나 경험 많아 보이는 편집 직원과 생 초보작가가 나누는 '책 만들기'에 대한 대화 내용은 한국에서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놀랍게도 비슷했다. 나는 Arthur의 바람대로 그의 책이 우리 동네 서점에 진열되어 팔리게 되기를 바란다. 돌아오는 길에 도넛 하나, 커피 한잔으로 점심을 간단하게 때웠다. 아마도 이 순간이 이번 여행에서 Arthur와 나의 마지막 자리일 것이다.

나보다도 더 오랜 해외생활 경험을 한 Arthur는, 내가 갖고 있는 한국과 미국 양쪽에 대한 마음과 사랑은 매우 당연한 것이고 어느 한쪽을 잊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느 한쪽이 원하는 대로만 할 수가 없었고. 그저 그런 딜레마가 있음을 인정하고 매 순간 필요한 일을 잘하는 것이 지금껏 해왔던 방식이라고 했다. 정해진 답은 없다고... 나는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Arthur가, 그의 존재 자체가 매우 고마웠다.

작은 노란 수동차는 어느덧 Arthur의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가볍게 포옹하고 '언젠가' 다음에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고, 나는 내 차에 올랐다. 룸미러를 통해, Arthur가 내 차가 사라질 때까지 집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잘 있어요. 우리 또 만나요."


- 오늘 저녁은 나의 Best Neighbor인 Mark & Sarah 그리고 아이들(Gavin, Grant)과 함께 하기로 했다. Sarah는 핼러윈 준비로 Pumpkin Carving 할 거라면서 꼭 오라고 문자까지 보냈다. 이들과도 이번 여행 마지막이니 당연히 가야 한다. 도착해 보니 아이들은 마당에서 놀고 있고 Sarah는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Mark는 같이 맥주를 사러 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차고 안에 모셔둔 그의 Dream car, 1966년식 Mustang을 준비한다. 나를 꼭 태워주고 싶단다.

이 차는 Mark의 40살 생일 기념으로 산,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일종의 이정표 같은 소중한 것이다. 클래식한 디자인, 엄청난 엔진음으로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번에 끄는 이 차를 사기로 마음먹은 Mark의 용기도 그렇지만 Sarah의 배려와 아량도 보통이 아님을 증명하는 물건이다. Mark는 내가 옆집에 살고 있던 2년 전에도 '한국 가기 전에 드라이브 가자'라고 했는데 아쉽게도 기회를 갖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야 했었다. Mark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66년식 Mustang을 타고 엄청난 엔진음과 휘발유 타는 냄새를 즐기며 도로를 달리니 길 위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심지어 맥주 가게 점원은 우리가 술 사고 나갈 때 주차장 밖으로 까지 나와서 인사를 한다.

나이를 먹어 중년이 되고 다행히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나는, 아주 오랫동안 원하는 것이 없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Mark는 검소하며 친절하고 겸손하기까지...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다. (Sarah는 그런 Mark가 아이 같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나이 50이 넘어서도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다면 그만큼 삶이 활기차지는 게 아닐까? 나에겐 없는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이 차가 아니라 Mark의 저 환한 표정... 한껏 신나 하는 그에게 Mustang 엔진음 보다 큰 소리로 나의 부러움을 전했다.

"Hey Mark! I love your style."

(사진) Mark의 4700cc 1966년식 Mustang과 Gavin의 2020년식 12V Mustang이 나란히 주차되어 있다.

- 미국 가정에서 핼러윈으로 집을 꾸밀 때 가장 중요한 것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당연히 호박이다. 호박을 집 문 앞에 두어야 가을 맞을 준비, 핼러윈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핼러윈 꾸미는 것에 진심인 집이라면 그냥 호박을 내놓지 않는다. 기괴한 모양으로 호박을 조각해서 내놓는 잭 오 랜턴(Jack O'Lantern)까지 해야 제대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인지 그저 신기하기만 했었다. (그래도 우리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세은이가 유치원 때 만든 '각시탈'을 씌워서 내놓았었다.)

한 달 뒤 핼러윈을 맞이하여 Sarah가 준비한 오늘 저녁 이벤트는 Pumpkin Carving이다. 식탁 위에는 커다란 호박 여러 개와 'Pumpkin Carving Kit'가 준비되어 있다. '이런 걸 아예 세트로 만들어 파는구나' Sarah가 건네준 Kit에는 작은 톱, 송곳, 주걱 그리고 디자인 종이가 들어있었다.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이라 생소하지만 Sarah의 설명에 따라, 꼬맹이들 하는 걸 보면서 하면 될 것 같다.

1. 톱을 사용해서 꼭지가 있는 뚜껑을 딴다. 뚜껑은 나중에 다시 덮어야 하기 때문에 톱을 약간 비스듬하게 세워서 아랫부분이 좁아지게 하여 둥글게 따낸다. 손을 집어넣는 구멍이니까 적당히 크게 파야 한다.

2. 주걱을 사용하여 호박 속을 파낸다. 호박 속에는 너덜너덜한 섬유들과 손톱 크기의 딱딱한 씨가 잔뜩 있다. 힘주어 오래 & 반질하게 파내야 한다. (여기서 아이들은 금세 포기하고 엄마 아빠의 일이 된다.)

3. 디자인을 호박의 앞면에 붙인 뒤 송곳으로 선을 따라서 표시를 한다. 송곳 작업이 끝나면 톱으로 다지인을 썰어 낸다.

4. 디자인이 완료되면 호박 속의 잔여물을 다 제거하고 작은 LED 등을 속에 넣고 뚜껑을 닫으면 끝.

호박 속을 깨끗하게 긁어내는 건 꽤나 힘들었지만 어찌어찌 나의 첫 잭 오 랜턴이 완성되었다. Sarah와 아이들 덕에 이런 것도 해보는구나. Gavin, Grant 그리고 내 것까지 호박을 집 입구에 가져다 놓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자기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고, 나와 함께 하기 위해 시간까지 맞춰서 경험할 기회를 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에게 미국 보통 가정의 핼러윈을 처음 알려준 것은 Mark와 Sarah였다. 아마도 우리가 여태 미국에 살고 있다면, 올해도 핼러윈을 같이 보냈을 것이다. 지금 나는 그들과 함께 있지만, 이젠 내가 다시는 그들과 함께하는 핼러윈을 맞이할 수 없음이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보고 있지만 그립다는 말이 너무도 절실히 마음에 와닿는다.

(왼쪽) 할로윈 준비를 위해 호박 파내기를 하는 모습. 시작은 아이들이 하지만 결국 엄마 아빠의 몫이 된다. (오른쪽) 호박 조각의 결과물. 꽤나 힘이 필요한 일이다.
(사진) 속을 파내고 겉을 조각한 호박 (Jack O'Lantern). 그 속에 LED 전등을 넣고 집 앞에 전시하면 아주 그럴싸하다.

-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어른들은 저녁 먹고 남은 타코를 먹으려 Newyork Yankees의 경기를 같이 봤다. 그리고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Sarah는 내가 이사 와서 보낸 첫 편지를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한국 여행지 중에 DMZ가 궁금하다는 Mark에게 내가 반드시 대신 가서 PPT로 정리해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지금 이렇게 가면 또 언제 다시 보게 될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진) 혼자 남은 밤.

늦은 시간 집에 오니 Owen과 Jean은 이미 자러 가고 1층엔 아무도 없다. 오늘은 Arthur 그리고 Mark, Sarah, Gavin & Grant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었고 내일은 Owen과 Jean과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너무나 조용한 나의 미국 집. 마음이 허전하다. 떠나는 날 내가 느끼게 될 아쉬움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할 수 있다. 기쁘고 즐거웠던 만큼 고통도 크겠지. 2년 전 그 순간처럼.


통풍 때문에 오랫동안 먹지 않았던 맥주를, 혼자 몇 병인지도 모르도록 계속 마셔야 했던 밤이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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