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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다움 Apr 10. 2024

119 앰뷸런스 소리는 나를 겸허하게 만든다

 직장은 병원이다. 아파서 병원에 오는 환자들을 간호하는 것이 나의 일이며 내가 일하는 장소가 병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을 한다. 매일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직장과 집의 거리'일 것이다. 특히나 새벽에 출근하기도 밤늦게 퇴근하기도 하는 삼교대 근무일 경우 더욱 그렇다. 나는 병원 근무를 시작한 신규간호사일 때부터 삼교대 출퇴근의 편의성을 위해 항상 병원 근처에 집을 구하여 살았다. 병원 근처의 주거 지역에서만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나는 병원 가까이에 있는 집들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병원의 서쪽에 있던 동쪽에 있던, 원룸이던 아파트이던, 월세이던 전세이던지 관없이 119 앰뷸런스를 많이 보고 듣는다는 것이다. 출퇴근하는 길에 지나가는 앰뷸런스를 보기도 하고 개인적인 외출로 집 밖을 나서서 걷는 중에도 앰뷸런스는 자주 보인다. 근무가 아닌 날 집에 있을 때는 창문 밖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창문을 통해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브런치 글을 쓰는 지금도 '웨에엥' 소리가 빠르게 지나간다.


긴급한 붉은 소리. 몇 년 동안이나 들었지만 119 앰뷸런스 소리는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소리이다. 빠르게 지나가기에 단 몇 초밖에 들리지 않는 짧은 소리이지만 이것은 한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하나의 세상이 뒤바뀌고 있는 소리이다. 아니, 앰뷸런스에 누워있을 환자와 가까운 사이인 모든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세상이 뒤바뀌고 있는 소리이다. 잠깐 들리는 그 소리 앞에서 내가 방금까지 하고 있던 모든 고민들은 하찮아진다. 수많은 사람들의 세상과 거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나는 겸허해진다.

'119 앰뷸런스의 도움을 요청한 그가 조금 덜 아프고 안전해지기를. 그의 세상과 그가 속한 모든 세상이 조금 덜 무너지기를.'


잠깐 기도를 한 후에야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나의 세상을 살아간다. 조금은 더 겸허해진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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