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MD의 일 09화

소매업은 상품이 아니라 욕망을 다룬다

언택트에서 다시 컨택트로

by 머큐리

MD라는 직업을 가진 자가 바라보는 소매업, 이커머스, 플랫폼.

그리고 식재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모아놓으려고 합니다.

2002년부터 식품 MD의 業을 영위해왔지만 실상은 業에 대한 규정조차 명확하지 않아 늘 고민이 많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여러분들과의 토론을 일으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아래는 최근, 오프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ㆍ서울의 홍대, 가로수길, 서촌, 경리단길, 우사단길, 종로 피맛골, 성수동 등 서울의 골목 상권

ㆍ춘천 육림고개, 경주 황리단길, 제주 아라리오길 등 전국으로 확대되는 골목길의 도전

ㆍ대형마트로 인해 사라졌던 동네마트의 복귀와 약진

ㆍ입소문으로 붐비는 동네 반찬가게, 빵집, 정육점, 과일가게, 핸드드립 커피전문점

ㆍ대형 서점도 힘든 시장에서 속속 문을 열고 있는 동네 독립서점

ㆍ아직은 보기드물지만 다시 생겨나는 동네 레코드가게


이러한 변화를 목도하며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매우 근본적인 변화가 이미 꽤 오랜 기간 물 밑에서 진행되어 왔고, 조만간 수면 위로 분출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물론, 일시적인 유행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견해이다.

하지만 골목길만 하더라도, 서울의 여러 골목길들이 유행에 따라 뜨고 지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을 때 전주와 경주, 강릉과 춘천, 제주도까지 전국적인 유행으로 번져나가는 현상은 그저 유행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사실 위와 같이 소매업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국지적인 규모이다. 이보다 훨씬 큰 규모의 폭풍같은 변화가 동 시대에 함께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우리는 조금 더 진지하게 변화의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ㆍ시민의 촛불혁명이 무너뜨린 정치 권력

ㆍ무너진 레거시 미디어

ㆍ도전에 직면한 엘리트 권력과 문화


한 세대를 지배했던 논리, 문화적 조류에 크나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 변화는 이미 오랫동안 진행되고 있었으며 흐름을 되돌리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리테일(Retail) 혹은 소매업으로 좁혀보자.

지난 한 세대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를 거의 대부분 잠식하다시피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눈 앞에 있는 가족과의 대화를 단절한 채 SNS로 빠져들었다.

소매업도 마찬가지여서, 한줌도 안되는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이 전체 시장의 1/4을 차지했다.

대중적 이슈 역시 대부분 독식했다. 창고 혹은 허름한 아파트에서 창업했던 그들의 시작은 미미했으나, 대세는 완전히 온라인으로 기울었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상식이다.


그렇다면, 백여 년 넘게 소매업을 장악했던 대형 소매업(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을 무너뜨린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이 대형화, 독점추구라는 전철을 밟으며 향할 곳은 어디일까? 완전한 시장 장악으로 귀결될까?


그렇지 않다.

인류의 역사에서 소비의 역사, 대형 소매업의 역사는 상당히 짧지만 사례는 충분하다.

다양한 사례들은 끝없는 대형화와 독점 추구의 결과가 결국 몰락으로 전개되는 경우 역시 충분히 보여준다.


불과 2년 전에 파산한 시어스는 120년 가까이 소매업의 정점에 서있던 기업이다.

하지만 그들은 1970년 대 오일 쇼크로 공황에 빠진 중산층을 배신하고 세계 최고층 빌딩을 세우는가 하면 금융사업으로 다각화를 시도하고, 결국 1993년에는 자신들의 시그니처인 카탈로그를 폐지하는 악수를 둔다. 시어스를 친구로 여겼던 중산층이 몰락하는데도 외면하면서 다각화, 대형화, 독점화를 추구한 결과는 파산이었다.


미국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에도 사례는 많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인 조선에서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백화점으로 상계를 장악했던 화신백화점은 현재 건물조차 남아있지 않다. 일본 기업이 세운 조선 최초의 백화점 미츠코시가 신세계 백화점 본점으로 건물이나마 남아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화신백화점은 종로 상권을 장악한 뒤, 전국적인 규모의 상권 장악을 시도했는데 그것이 화신연쇄점이다. 화신의 박흥식은 무리한 다각화를 시도하면서 몰락의 불씨를 피우고, 결국 적극적인 친일로 등을 돌렸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의 기억에서 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온라인 플랫폼 역시 독점과 대형화로만 끌고 간다면 그 답과, 갈 방향은 자명하다.


완전한 시장 장악으로 귀결될 것 같았던 소매업의 판도에 골목길, 동네마트, 동네가게들이라는 변수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 20여 년전 오프라인의 전통적인 소매업 강자들이 온라인의 창업자들을 무시한 결과는 오늘과 같으니 과거를 돌아볼 일이다.


또한 사람들을 봐야 한다. 기업들과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시장과 경쟁 상대만 바라본다. 소비자를 바라본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우리가 매일 생산해내는 수많은 자료를 다시 들춰보면 소비자는 빠져있거나 극히 적은 양의 언급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쟁 상대가 아니라 사람들로 시선을 돌려보자.


사람들은 온라인, 모바일 디바이스와 SNS에 열광했고, 지금도 푹 빠져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만져보고, 접촉하며 부대끼는 과정에서 발생한 감정적 역동성은 DNA에 내재되기라도 한 것처럼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곤 한다.

소매업의 본질은 상품의 판매가 아니라 상품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 가득찬 "욕망"을 다루는 것이다.

소유, 과시, 가치와 관련된 소비의 욕망은 언제나 감정의 역동성을 크게 출렁이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의 감정에 닿아 반향을 일으키는 소재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이커머스 플랫폼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여전히 편리하고 다양하며,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지금, 고즈넉한 골목 혹은 익숙한 우리 동네에서 마음의 위로뿐만 아니라 즐거움과 만족도 얻어내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전국적으로 골목 상권의 도전이 번져나가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언택트가 컨택트의 세상을 장악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컨택트에 주목해야 한다.

다만 그것은 다수 대중(Mass)을 향한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소규모 집단에 대한 개별적이고 특별한 형태의 접근이어야 한다. 지역 단위의 Localization이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지금 골목길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들은 한 시대를 가늠할 정도의 큰 변화가 나타날 것임을 예고하는 전조 현상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우리도 변화를 마주하며, 대안상업_ Alternative Commerce 을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경쟁에서의 승리, 독점, 대형화를 금과옥조로 삼아 앞만 보고 달리던 이전까지의 상업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기 어려울 것이다.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 https://www.pinterest.co.kr/pin/115193702940703137/


The Telegraph (telegraph.co.uk)

28th December 1937: Eager shoppers fighting over the bargain hats on offer at the Harrods winter 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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