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나쁜 경험과 좋은 경험을 구분 짓는 기준은 '굳이 필요한 경험이었나?'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여기엔 '미래에 또 일어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미래에 또 일어날 일이고 그 미래를 피할 수 없다면 나쁜 경험도 좋게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매치기를 당한 건 나쁜 경험이지만, 미래에 또 소매치기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 세상에서는 이제부터 가방을 앞으로 메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소매치기가 사는 세상에서 그 사람이 잡히기 전 마지막 타깃이 나였다면 그건 나쁜 경험이다.
소매치기를 당하는 것은 굳이 필요한 경험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한 배움이 있었기에 미래에 또 일어날 일이라면 대비하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겨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또 일어날 일이 전혀 없다면 그건 나한테 없어도 됐을 나쁜 경험이다.
흥미로운 건, 미래에 또 일어날 일인지 내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삶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확률보다 그 반대의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험이 좋은 경험으로 포장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경험을 통한 배움이 있었는가?'이다. 첫 번째 소매치기를 당했을 때와 동일하게 가방을 뒤로 메고 걷다가 두 번째 소매치기를 당한다면 첫 번째 경험은 그저 나쁜 경험일 뿐이다.
첫 번째 경험의 실수나 잘못을 통해 배운 것 없이 동일한 일이 미래에도 반복된다면, 그건 좋은 경험으로 포장할 수 없다. 그 사건은 나에게 오직 마이너스(-) 일뿐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계곡에서, 물 밖으로 혼자 힘으로 나올 수 없어서 엉엉 울면서 허우적거린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보는 언니가 나를 꺼내줬는데, 어른이 없는 물가에서는 어린이 혼자 놀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다시는 어른이 없는 물가에서 혼자 놀지 않았다. 그래서 이건 좋은 경험으로 포장할 수 있다.
나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을 겪었다면, 다음번엔 이 '나쁜 경험'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배움을 찾아 '좋은 경험'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생은 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