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빨간 반딧불이

프롤로그

by 판도


스승이 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학교 안 곳곳에 도사린 무모하고 영악한 아이들이 그곳을 엉망으로 만들고 선생들을 농락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부모들이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음에도 겁도 없이, 거리낌도 없이.


아이들은 학교를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고 불렀다. 산기슭을 깎아 건물을 짓고 외벽을 온통 하얗게 칠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카사비앙카’라는 외국곡에 엉터리로 가사를 바꿔 넣어 교가라고 부르곤 했는데, 꼰대들은 어린애들의 치기 어린 장난쯤으로 여기며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학교에는 노래 따위 하찮은 일보다 꼰대들을 환장하게 만드는 굉장한 일이 따로 있었으니까.


영원할 줄로만 알았던 아이들의 세상이 막을 내린 것은 새로 온 선생 탓이리라. 그는 아이들이 교가라고 멋대로 부르는 노래를 금지곡으로 정하여 스승의 권위에 도전하는 버릇없고 고약한 싹을 댕강 잘라버렸다.


언덕 위의 하얀 집이 정신병원의 은어라는 사실을 선생들에게 알려 경각심을 일깨운 이 또한 새로 온 애송이 선생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선생들이 정말 몰랐었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


거듭 말하지만 선생들의 관심사는 처음부터 딴 곳에 있었으니까. 그것이 학교를 변종들의 서식지로 만들 줄은 아무도 몰랐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