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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향한 가파른 언덕길 오른편으로는 라면 파는 분식집과 자잘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길 건너에는 아담한 단층집들이 가게들을 마주 보고 있다.
낮은 담장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붉은 장미를 보고 한 아이가 탄성을 지른다.
“와, 예쁘다. 향기도 좋네.”
코를 벌름거리며 장미꽃을 들여다보던 녀석이 다시 언덕길을 오르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언덕 위의 하얀 집
불이 나면 빨간 집
타고 나면 까만 집
재가 되면 하얀 집
“공산, 같이 가.”
녀석이 멈춰 선다. 돌아서서 싱긋 웃는 공산을 불러 세운 아이는 그의 친구 조하모. 그를 향해 달려간 하모가 헉헉대며 숨을 몰아쉰다.
“아, 숨차.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즐거워? 노래까지 부르고.”
“이 노래를 부르면 기분 좋아지는 거 몰라?”
공산이 눈을 찡긋거리며 하모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어젯밤 꿈에 하얀 집이 불타더라고. 곧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말을 마친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문을 향해 껑충껑충 뛰어간다.
“지각, 지각!”
큰 소리로 외치더니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공산.
언덕 위의 하얀 집
꼰대들만 사는 집
불이 나면 빨간 집
꼰대들만 죽는 집
그의 섬뜩한 꿈과 노래 가사에 하모는 걱정이 앞선다.
‘저 녀석 또 뭔 사고를 치려고.’
그는 서둘러 공산의 뒤를 쫓아 뛰었다. 간신히 공산을 따라잡아 교문에 들어서는데 분위기가 평소와 사뭇 달랐다. 땡볕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던 것. 교문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선도부 학생 세 명과 교무부장 거머리, 그리고 처음 보는 사내 한 명이 화단 앞 그늘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는데, 날이 더워지고 나서는 못 보던 광경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씩씩하게 인사하는 공산에게 거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늦었다. 어서 올라가거라.”
“네.”
선도부 학생들에게 아는 척을 하며 막 그들을 지나치려는데, 낯선 사내가 공산을 향해 한 발 다가섰다.
“야, 방금 부른 노래가 뭐지? 다시 불러 봐.”
공산이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되물었다.
“카사비앙카 모르세요? ‘언덕 위의 하얀 집’이잖아요.”
“그 노래는 나도 알아. 하지만 넌 다르게 불렀어. 다시 불러 보라니까.”
공산은 별 걸 다 시킨다는 표정을 지으며 태연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언덕 위의 하얀 집, 눈이 와도 하얀 집, 밤이 되면 까만 집.”
“이 자식 봐라. 아까 하고 다르잖아.”
옆에서 지켜보던 교무부장이 답답한 듯 끼어들었다.
“안 선생, 애들 늦었다니까. 그만 들여보내. 노래 좀 부른 것 같고 뭐 그리 소란인가.”
사내가 멋쩍어하며 말을 흐렸다.
“그게 아니고, 저 녀석이 이상한 노래를….”
“어허, 알았다고. 얘들아, 어서 올라가. 산인 장난 그만 치고.”
그러나 젊은 사내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야, 잠깐만, 너 머리가 너무 길어. 내일까지 자르고 교무실로 와. 알았어?”
사내가 다시 공산을 불러 세웠지만, 공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모야, 빨리 가자.”
“아니, 저 자식이.”
하모에게 달려가려는 사내를 교무부장이 불러 세웠다.
“안 선생, 무턱대고 덤비지 좀 말라고. 애들은 그렇게 다루는 게 아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