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주차_D-Day

10km (트랙 25바퀴)

by 슬로우 러너

가족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던 아빠의 소박한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다섯 가족 중에서 아빠 혼자 달렸다. 어느날, 이 좋은 운동을 가족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마라톤 대회에 나갈 수 있다면 더욱 좋을것 같았다.

'이게 가능할까...?'


작년과 재작년에 가족 달리기를 몇번 시도해 보았지만 아빠가 기대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같이 동네 주변에서 달리려고 집을 나섰지만 다섯 식구의 속도가 서로 달라서 뿔뿔이 흩어졌던 날이 여러번 있었다. 조금 느린 속도에 맞추면 빨리 달리고 싶은 아이는 지루하게 느꼈고, 조금 빠른 속도에 맞추려고 하면 뒤에 있는 아이는 따라오지 못했다. 아빠 혼자 좋아하고 다른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나가는 날이 몇번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꾸준하게 이어갈 수 없었다.


작년 여름에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 마침 트랙이 있어서 그곳에서 달리면 서로 속도가 달라도 안전하게 각자의 속도로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 초에 아이들에게 함께 달리기를 하자고 말하면서 상금도 걸고 경쟁을 부추기면서 "우리 가족 마라톤"을 제안했다. 마라톤 대회에 같이 나가면 물론 좋겠지만, 주말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우리 가족만의 마라톤 대회를 준비했다.


우리 가족 마라톤 10Km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 세 아이와 함께 10km 달리기를 도전하는 것이 무모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작년에 아빠와 딸이 10km를 나란히 달렸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한번 도전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학교 일정으로 훈련에 빠지는 날도 있었지만 지난 4개월 동안 매주 충실하게 달리기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큰 아들이 무난하게 1등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6월에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축구 시합이 있어서 달리기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큰 아들과 막내 아들은 달리기 실력이 꾸준하게 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주 8km 경주에서 딸이 오빠를 한 바퀴 추월하면서 1등을 했다. 10km에서 누가 우승을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드디어 D-Day가 되었다. 다행히 날씨가 많이 덥지 않았지만, 오후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려서 달리기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일기 예보를 확인해 보니, 저녁에 강수 확률이 30-40% 정도 되었다. 5시 즈음 되었을 때 비가 그쳤다. 결정을 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두 아들은 비가 내리더라도 예정대로 달리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고, 딸은 비가 안오는 다른 날로 일정을 연기하자고 말했다.


이럴 때는 아이가 3명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1로 의견이 나누어졌기 때문에 민주적인 방법으로 결정을 했다. 8시30분에 집에서 워밍업 스트레칭을 하고 학교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달리기 중간에 물을 마실 수 있게 각자 물병에 물을 담아서 챙겼다. 급수대를 트랙 옆에 설치하기 위해서 휴대용 의자 2개를 집에서 가져갔다. 가족 마라톤이지만 필요한 것들을 챙겨가며 준비했다.


출발선에 섰다. 지난주 순위에 따라서 막내 아들이 1번 레인, 큰 아들이 2번 레인, 딸이 3번 레인, 아빠가 4번 레인에서 출발했다. 아빠의 목표는 45분이었다. 2년전에 처음으로 출전했던 10K 마라톤에서 49분29초에 뛰었는데 이번에는 그 때보다 빨리 뛸 수 있을것 같았다. 아이들의 목표는 기록보다 순위가 중요했다. 세 명 중에서 1등을 하면 우승 상금 $100을 받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첫 바퀴를 뛰고 시계를 보니 1분 40초였다. 이정도 속도로 계속 달리면 45분 안에 충분히 들어올것 같았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느려져서 한 바퀴에 1분 55초를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한 바퀴에 1분 55초와 2분 사이를 오가면서 달린것 같다. 아이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나서 트랙 반대편에서 달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3바퀴 정도 달렸을 때, 큰 아들이 선두에 있었고, 10m 정도 뒤에서 딸이 뒤따라 가고 있었고, 막내가 누나보다 10m 정도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세 아이들이 나이 순으로 달렸다. 중간에 멈춰서 물병을 들어서 물을 마신 후에 그 자리에 얌전히 물병을 놓아두고 다시 달리는 아이들이 있었고, 물병을 들고 뛰다가 한 모금 마시고 트랙 안에 세워두고 달리는 아이도 있었다. 아빠는 후자를 선택했다.


아빠가 9km를 달렸을 때 큰 아들을 5바퀴 추월했다. 시계를 보니 이미 44분이 넘어 있었다. 45분에 달려보겠다고 했던 말은 너무 거창한 목표였다. 마지막 1km를 열심히 달려서 49분 9초(4분 54초/km)의 기록으로 결승선에 들어왔다. 2년 전보다 20초 기록이 단축되었다.


물을 마시면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큰 아들이 다가왔다. 딸보다 반 바퀴 이상 앞서 있었기 때문에 여유가 느껴졌다. 큰 아들의 남은 5바퀴를 같이 달렸다. 큰 아들은 이미 8km를 넘게 달리고 있었지만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한것 같았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큰 아들이 옆에 있는 아빠에게 말했다.

"달리기가 재미있어"
'이럴수가...! 이런 날이 오다니...'

아빠는 큰 아들의 말에 정말 놀랐다. 평소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이 지난 4개월 동안 가족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면서 많이 성장한 모습이 느껴졌다. 몸도 건강해졌고 마음도 넓어졌다.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이제 100m를 달리고 나면 1등 상금 $100를 받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성취감도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100m를 전력 질주로 달리는 큰 아들의 뒤통수를 보면서 아빠는 뒤따라갔다. 10km를 다 뛰고 천천히 몸을 이완하면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속도를 올릴 수가 없었다.


큰 아들은 1시간 7분 45초(6분 46초/km)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지난주에 8km를 달렸을 때(7분 48초/km)보다 속도가 1분 이상 빨라졌다. 지난주에 컨디션이 많이 안좋지만, 이번주에는 완전히 회복된 모습으로 달려서 1등을 했다.


아빠는 계속 달려서 딸을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어려울것 같았다. 딸의 마지막 100m를 같이 뛰기 위해서 트랙 사이를 대각선으로 가로 질러서 갔다. 딸은 마지막 힘을 내서 전력 질주로 달렸고, 아빠는 이번에도 딸의 뒤통수를 보면서 따라갔다. 딸은 1시간 9분 50초(6분 59초/km)로 결승선에 들어왔다. 작년에 아빠와 딸이 같이 10km를 달렸던 기록을 찾아보니 1시간 20분이었다. 1년 사이에 기록을 10분 단축했다.


잠시 후에 막내 아들이 다가왔다. 3바퀴가 남아 있었다. 10시가 거의 다 되어서 학교 운동장은 어두웠지만 막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엄마는 일을 마치고 우리 가족 마라톤을 응원하기 위해 왔다. Canada Day 전날이어서 옆 동네에서 폭죽을 쏘아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한밤 중에 불꽃놀이를 보면서 막내아들과 남은 3바퀴를 달리는 시간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1시간 23분 1초(8분 18초/km)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아빠는 총 14km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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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잠깐 들려서 게토레이 한병씩을 들고 맥도널드에 가서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크고 비싼 선물이 아니라 게토레이와 아이스크림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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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동안 준비했던 "우리 가족 마라톤"이 무사히 끝났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준 아이들 덕분에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이 하나 생겼고, 우리는 함께 달리는 가족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큰 아들이 하는 말을 듣고 아빠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후에 보스턴 마라톤에 나가보고 싶어"

아빠의 꿈이 아들의 목표가 되었다.

'이런 수가...! 이런 날이 오다니...!'


지난 4개월 동안 가족들과 함께 달리면서 가족들이 함께 성장하고 서로에게 한 걸음 다가서는 시간이었다. 이 좋은걸 해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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