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다가온 봄처럼, 나의 루틴도 다시 시작된다.
오늘 아침, 평소보다 늦게 한강을 달렸다. 봄의 기운이 머무는 한강에는 사이클을 즐기는 이들이 러너보다 더 많았다. 겨울이 쉬이 떠나지 않던 지난 몇 주, 새벽 어둠 속을 달리며 나는 봄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새 개나리는 한강 주변을 노랗게 물들였고, 따스한 햇살은 내 마음속에도 조용히 스며들었다.
봄은 그렇게, 우리 삶 속에 조용히 찾아와 있는지도 모른다.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와 있는 것이다.”
— 김종삼, 봄
주말 동안 다녀온 부산 골프 행사로 몸은 다소 지쳐 있었지만, 오늘 아침의 공기 속에서 나는 오히려 새로운 순환됨을 느낀다. 사무총장으로서 첫 공식 행사였기에 부담도 있었지만, 함께한 이들의 웃음 속에서 나의 역할이 누군가의 하루를 밝게 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최선을 다해준 것, 그 자체로도 충분히 고마운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가볍게 아침을 먹고 화분에 물을 주는데, 무심히 지나치던 제라늄 화분에 분홍빛 꽃봉오리가 피어 있었다. 2년 전 양재꽃시장에서 분양받아 꽃이 피길 기다려왔건만, 언젠가부터 초라한 잎만 남아 있어 기대를 접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오늘, 바로 오늘. 작지만 선명한 그 꽃은 마치 봄의 축복처럼 내게 말을 걸었다.
“꽃이 피는 이유는, 단지 피고 싶었기 때문이야.”
오늘 이후로 왠지 모든 것이 더 잘 풀릴 것 같은 느낌. 그것은 꽃 때문이 아니라, 꽃을 보고 설렐 줄 아는 내 마음 때문이리라.
그리고 문득, 내가 지키고 싶은 루틴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는 내 삶의 루틴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뛰는 심장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감각, 그 단순한 진실을 매일 같이 경험하고 싶다.
그 행복을 나누는 일은 나의 일상 속 작은 실천으로 이어진다.
아침마다 아들과 남편에게 좋은 영상이나 시구, 인용문을 톡으로 전한다. 당장은 마음 깊이 닿지 않더라도, 그 말들이 쌓여 언젠가 그들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직장에서는 상사인 내가 먼저 눈을 맞추고 인사하려고 한다. 목소리를 한 톤, 두 톤 높여 환하게 말할 때, 그 인사가 동료들의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햇살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엘리베이터에서 스치는 이웃, 길을 달리다 마주치는 러너, 업무상 만나는 고객들까지,
나는 먼저 웃으며 다가가려 한다. 나의 인사가 그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고, 철학자의 말을 되뇌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단순한 실천이 내 삶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이른 아침, 커피를 내리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 1악장을 틀어놓는다.
예전엔 주말이면 침대와 하나가 되어 피곤을 잊으려 했지만, 요즘 나는 혼자만의 루틴을 더 소중히 여긴다. 새벽의 고요를 즐기고, 책 속에서 다른 시간과 공간의 사람들과 조우하며, 표현에 어색하고 무감각했던 내가, 나를 표현하고 일상에서 느낀 모든 것을 글로 써본다. 이 시간이야말로 나를 가장 잘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순간이다.
결국, 나를 힐링시키는 힘도, 나를 다시 달리게 하는 에너지도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마음이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스치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가 되기를, 나는 오늘도 조용히 바라본다.